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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해 Apr 06. 2023

제발 담배로 길빵 좀 하지 마라

 20살이 지나며 내 세상이 좀 더 넓어졌을 때,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살던 동네를 유심히 걸어 다니면서 차이점을 하나씩 생각해봤다. 먼저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했다. 단순히 걸을 때 발바닥이 불편한 것보다, 비가 오면 물이 고여 물을 피해 앞꿈치를 들고 한 발 뛰기를 해가며 걸어야 하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두 번째로 인도가 정말 미친 듯이 좁다. 사람 두 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넓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2미터마다 엄청나게 큰 나무를 심어놨다. 나무가 있는 곳은 옆으로 지나가야 한다. 나무만 있느냐? 펜스 옆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고, 보도블록에도 풀이 자라 양쪽으로 벼를 심어 놓은 것 같다. 동네에서 길을 걸으면 게임 '템플런'보다 더 힘들게 길을 걸어가야 했다. 이 모두를 피해 자전거도로나 갓길로 걸어가고자 하면 불법주차 차량들이 길을 막아선다. 피할 수도 없어서 불편함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걷다 보니, 오히려 편한 것에 익숙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길가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길바닥이 템플런인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하루에 못해도 5명은 앞사람을 제쳐야 했다.


 길에서 담배를 대체 왜 피우는 걸까. 나는 그래도 흡연에 대해서만큼은 이해하는 축에 속한다. 흡연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생각과 환경, 일로 인해 정신 없고, 불안한 머리 속을 진정시키고, 긴 한숨으로 쉬어간다는 점에 있다. 즉, 흡연은 연속된 시간을 잠시 끊는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피우는 것을 잠시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래서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복잡한 곳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담배를 싫어하는 이유도 안다. 연기는 원하지 않아도 잉크처럼 퍼져나가 원치 않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는 공간으로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원하지 않아도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흡연 구역을 좀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흡연을 할 수 있으니, 원치 않는 사람들은 가지 않으면 되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길목이 아닌, 구석 자리에, 꽤 많은 수를 할당해야 한다고 본다. 원치 않는 사람들이 피해 가는 건 말도 안 되고, 흡연자들이 피해 가야 하며, 그곳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서 피었다고 하면 비흡연자가 당당하게 제재를 가할 수 있으니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식적 흡연 구역이 너무나도 적다.


 그러나 나는 흡연자가 아니다. 담배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흡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으나 흡연자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엔 술이 있다. 대체제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담배까지 피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이런 생각들이 영글지 못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주위에도 학창 시절부터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치기 어린 마음에 따라 하지 않을까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단 한 모금의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간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아이들 사이에선 미묘한 기류를 만들어낸다. '나는 너와는 급이 다르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계급 사회다. 아직 자아 성장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간의 눈치를 보며 사회를 배우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떤 규율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힘을 뜻한다. 술과 담배라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싸우지 않고서도 내가 너보다는 높은 계급이라고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수단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담배를 하나 꺼내 피면서 친구에게 권하는 모습이 간지가 나지 않았다. 민증을 속이고 당당히 들어가서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은 간지가 나지 않았다. 나도 몇 번인가 형, 누나들을 따라서 고3 시절 술집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술을 마셔보라는 권유에 나는 미안하다며 이야기했다. "나이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신념이라 지금 마실 수 없어. 나는 고등학생이니까." 물론 술집 출입 자체가 안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당시 세상 모든 것에 반항기 넘치던 나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기 때문에 술집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술을 안 마실 자신이 있는 나는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생각이지만, 그래도 나는 과거로 돌아가 당시의 내가 된다고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내렸을 것 같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생각을 쌓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면 나는 신념을 지켜내는 사람이 간지가 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담배도, 술도 20살이 되기 전엔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가족과 밥을 먹다 물인 줄 알고 먹었던 한 잔의 술만 제외하면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마신 날은 1월 중순의 가족과 함께 간 속초 여행이다. 저녁에 숙소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빨간 뚜껑의 참이슬과 만석 닭강정이 내 인생 첫술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신념이 생긴 후 13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간지나는 행동은 바로 중, 고등학생 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일이다. 내 자식에게도 자랑할 예정이다. 지금도 나는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고, 자식에게 꼭 해줘야 하는 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신념을 지키는 사람과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 어떤 것이 더 멋있는 삶인지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식이 고등학교에 다니며 술과 담배를 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실망은 많이 할 것 같다. "이렇게 멋없는 사람이 내 자식이라니, 나는 무엇을 자식에게 보여주고 가르쳤던 걸까?"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내가 길에서 담배 피우는 행위, 길빵에 대해서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간지가 너무 안 나고, 수많은 사람에게 민폐에 되는 대로 사는 사람 같이 보여서 싫어한다. 멋이 없다. 나도 충청도에서 대학을 다닐 때, 밤에 개천을 걸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나는 과연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멋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 정말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지? 대답은 의도하지 않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주망태가 된 상태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늘 카프리 한 병을 가지고 벤치까지 걸어가며 마셨다. 한 시간이 지나 한 병을 다 비웠을 땐, 집에 가져가서 빈 병을 모아 돈으로 교환했다. 충청도는 서울과는 달라서 개천에 사람이 없다. 이동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연기를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남에게 끼치는 피해를 책임질 수도 없다.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해도 되는지를 논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성년자 시절에 들어간 술집이 잘못된 것은 영업정지를 당했을 때,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흡연자만큼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무엇이 담배를 계속 피우게 만들까? 담배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끊어도 끊어도 다시 피게 만들고, 누군가는 멋이 없게, 누군가는 멋있게 보이고, 술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담배 피우는 곳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쫓아다녔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다. 길가면서 담배 피우는 것은 멋이 없다. 피해를 주고, 자신이 책임질 수도 없을뿐더러, 세상의 구성원 위치에서 잠시 벗어나 초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담배를 무가치한 쾌락의 도구로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길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자. 길도 좁아서 새치기 하기도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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