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행동 교정법 3. 선택과 집중

by 비해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잘한다는 것은 결과물의 퀄리티와 속도가 기준보다 높다는 뜻이다. 상황 별로 퀄리티가 더 중요할 때는 속도보다는 확실한 결과물이, 퀄리티가 중요하지 않은 일의 경우에는 속도가 더 우선 시 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용도에 따른 중요도 차이일 뿐, 대게 둘 다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잘한다는 것에 대해서 딱히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를 무의식 중에 알고 있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좋은 퀄리티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이는 재능이 하나도 없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언제나 단순한 일에서 우당탕탕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덜렁이들의 캐릭터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건을 우당탕탕 쏟는 그 장면의 실제 모델이었다.

내가 일상생활에서 ADHD인으로써 가장 불편을 느낀 점이 이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우당탕탕 쏟아지는 물건들의 소리에 짜증이 밀려오고, 나는 왜 이럴까 하는 한탄 섞인 자조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다. 그런데 이 일에 있어서는 내가 위에서 설명했던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에 잘하고 못 하고 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거기 책 좀 꺼내 달라고 했는데, 책을 꺼내서 전달만 해주는 행동에 잘하는 것, 못 하는 것이 있다는 건 좀 나조차도 오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0번 연속 실수를 했던 그날, 나는 빨리 인정하고 바꾸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내 문제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평가 결과 나는 그냥 이런 것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모든 일상을 관찰해 보니,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예로 들어보면 설거지를 해야 할 때, 먼저 그릇들을 개수대에 옮겨야 한다. 이때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큰 냄비 안에 크기 별로 그릇들을 겹치고, 차곡차곡 정리한 뒤에 한 번에 옮기는 것이다. 이는 갖다 놓는다는 관점에서는 가장 빠른 결과를 가져온다. 두 번째 전략은 식기류는 한 번에 모으고, 기름이 많은 것들은 따로 갖다 놓고, 오염도가 낮은 것들만 겹쳐서 가져가는 방법이다. 이 전략은 그릇의 외벽에 음식물이 묻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 시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은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그릇들이 묻지 않게 최대한 손에 들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온갖 젓가락부터 가위까지 집기류가 마치 게임 '괴혼'의 주인공 마냥 최대한 붙여 놓았다. 물론 내 손에는 접착력이 없어서 가지고 가는 동안 우당탕탕 쏟아서 바닥 청소까지 추가되었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나는 당시에 세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이루려고 했다. 먼저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그래서 젓가락 등, 눈에 보이는 작은 것들을 최대한 손에 든다. 그다음은 두 번째 전략인 그릇은 겹치면 설거지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겹치지 않게 젓가락을 든 상태로 최대한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빨리 갖다 놔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당탕탕이 었다. 나는 하나의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전략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전략을 선택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모든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음 문제는 공간 확보와 손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했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에 문제랑 이어지는데,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이 앞서다 보니 첫 동작에서 얼음이 되는 상황이 잦다. 예를 들면 큰 봉투 안에 있는 공을 다른 작은 봉투에 소분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큰 봉투를 열었고 한 손으론 큰 봉투의 입구를 잡고 한 손으로 작은 봉투 안에 공을 넣고 있었다. 그냥 큰 봉투를 세팅해 놓고, 두 손으로 공을 옮기면 더 빠르고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20% 정도 일을 한 뒤에 왜 이러고 있지 하고 그제야 세팅을 바꾼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지금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먼저 튀어나가고, 하나의 동작을 빨리 성공하는 것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잠깐 생각해서 이 일의 목표는 공 하나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공 전체를 옮기는 것인 것을 인지해야 하는데, 일단 행동하고 흥분해서 그 외의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우당탕탕 했던 대부분의 일들은 내 손이 꽉 차 있었다. 또한 내 행동에서 일어날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단 점이다. 책을 달라고 하면 책을 주는 것에 매몰되어 책이 이동하면서 주위에 컵을 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손에 물건을 쥔 상태에서 책을 주려면 물건을 놓고 책을 줘야 하는데, 손을 비우지 않고 책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할 때, 사전 작업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행동을 먼저 하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일단 행동부터 하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직 나는 이런 일들을 잘하지 못하고 바꿔야 되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 내게 더 필요한 피드백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전 작업, 세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정리를 할 때도 사용을 할 때, 반경 범위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도록 노력하고, 언제나 손을 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항상 손을 쉽게 비울 수 있도록 세팅을 하고, 시뮬레이션으로는 어려운 일들은 일단 하면서 수정한다. 모르는 것은 직접 부딪치는 일이 가장 빨랐다. 대신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시뮬레이션과 관찰을 반복한다. 그 결과 나는 이제 회사에서 가장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략을 선택하고 수정해 나가며, 손을 비울 수 있도록 세팅을 해놓고 시작하기. 나는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차분하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가면을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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