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Jan 27. 2022

이해하기 싫어요

상담실 이야기

"선생님, 선생님과 이야기해가면서 점점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데요,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아빠의 입장이 다 이해가 돼버리면, 아빠는 아빠의 잘못이나 책임에서 훌훌 자유로워지는 것 같고, 저는 반대로 남은 인생 동안 아빠에 대해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만 남는 것 같아요."


"잘못한 사람은 아빠인데, 아빠는 저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아빠의 입장이나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 억울해요"


"사과받지 못할 거라면, 그냥 저도 이렇게 못난 자식으로 살면서 아빠 미워할래요"


"미워하는 게 좀 더 마음이 편한가요? 그럼 같이 힘껏 미워해줄게요. 나는 절대 아빠 편 아니에요."


"근데 선생님이 저를 헤아려주고, 다독여주니까 제가 아빠를 마음껏 미워할 수가 없어요."

 

"상담 괜히 온 것 같아요. 전에는 미워하는 마음 하나뿐이어서 혼란스럽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음이 너무 복잡해요."


" 말이 너무 속상하네요. 상처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나에게만 마음의 짐이 늘어가는 같네요."


"좀 더 미워해도 되는 거죠? 아니, 그냥 계속 미워해도 되는 거죠? "


"상담받는다고 착한 사람 되어야 하는 거 아니죠?"


"내 눈에 자꾸 OO 씨의 착한 모습이 눈에 밟혀서, 거기에 내 시선이 자꾸 가요. OO 씨는 여기에서라도 한 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상담소를 찾아왔는데, 나는 자꾸 OO 씨를 착하게 보네요.


"그래서 OO 씨가 아빠를 용서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는 거예요. 내가 OO 씨의 착한 마음을 자꾸 일깨워서. 그래서 미안해요. "


 "저 안 착해요."


"저도 OO 씨가 착하고 불쌍한 사람 되는 거 싫어요. 절대 그러지 마요."


"근데 선생님 표정은 왜 저를.......... 맨날 흐뭇하게 보시는 건데요."


"그래요? 그렇게 보였나. 곤란한데......"



상담의 끝은, 이해하거나 이해받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것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내가 선택한 것들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자에게 바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