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하지만, 작년과 달리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비가 내려줘서 수월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이내 비 한 방울 없이 강렬한 찐 여름이 찾아왔다.
그리고, 올림픽이 찾아왔다. 읭?
말복은 의외로 시원했다. 서울의 한복판은 아직 더위가 아스팔트에 들러붙어 있지만, 그래도 찐 여름을 지나온 우리에겐 살만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내가 글을 쓰지 않은지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머릿속으로는 수도 없이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에만 있던 여유라서 문제였다. 몸은 너무나도 정신없이 바빴다. 야근에 야근. 재택근무 생활은 야근을 끝내고 야근이 다시 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누가 시켜서라기 보단 내마음의 불안함을 덜어내기 위해서였겠지.
계절만 여름이 불타오른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직장인인 나 역시 불타고 있었다. 나를 식혀야 했다. 그래서 주말엔 더 빼놓지 않고 주말농장에 왔다.
대문을 들어설 때 보는 농막은 언제나 좋다
여전히 운전을 1시간 반씩 하고 있다.
아내는 양평에 도착할 때 즈음이 되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양평 농막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문 밖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은 마치 최근에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를 방문하기 전 들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내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이다.
일주일 내내 집안 일과 딸아이 매니저와 가정교사로 직장인이나 다름없이 빡빡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아내는 힘든(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람된)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본인의 업무공간(집)을 떠나서 양평을 온다는 건 본인을 식히는 힐링이다.
수확물
사진을 생각보다 많이 찍진 않았다.. 일하기에 바빠서
여름이 자신의 스타일을 세 번 정도 바꾸는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채소와 과일 일부를 수확했다.
수확한 채소의 종류가 많지만, 수확물의 양인 소소하다. 예전에 주말농장 처음에 할 때는 작물의 종류보다는 수를 많이 했는데, 식량이 아니라 쓰레기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이젠 많이씩 하질 않는다. 생각보다 양이 많이 나오면 주변에 조금 나눠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확한 작물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제철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잡초
마당에 앉은뱅이 잡초 중 이쁜 녀석들은 잔디 역할하라고 내버려 두는 중
일주일만 자리를 비워도 가득 자라나는 잡초들.
주말의 일과는 잡초로 시작해서 잡초로 끝난다.
어떤 이들은 제초제를 주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돌을 갈거나 제초매트를 깔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잡초들도 수확물이다. 잡초를 뽑고, 잘라서 모은 뒤 썩히고 발효시켜서 다시 퇴비로 활용한다. 퇴비로 만드는데 시간은 꽤 오래 걸리지만, 자연에서 나온 것들을 다시 자연으로 보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결실은 항상 만족과 보람을 준다.
몇 가지 작물 일기
감자
감자를 팔 때 기대감과 감동은 질리지 않는다
3곳의 감자밭에서 각각 키운 감자는 결과가 어땠을까?
역시 가장 퇴비와 햇볕이 좋았던 중앙 텃밭의 감자가 실했다. 퇴비를 별로 주지 않고, 산에서 모아 온 낙엽과 부엽토를 섞어 줬던 감자밭의 감자도 나쁘지 않았다. 포대로 키운 감자는 의외이긴 했다. 추비(웃거름)를 주지도 않았는데, 꽤 견실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대파
대파, 루꼴라, 두메부추, 상추, 고수 다 잘 뜯어먹었네요
대파는 말해 모하나, 아주 무럭무럭 잘 자랐고, 수확도 잘했고, 씨앗도 충분히 받았다. 작년 가을에 심을 때는 우리가 정말 대파 농사를 못하는 건가 싶었는데, 원래 가을에 심어서 봄에 수확하는 거란다. 우리는 조금 늦게 수확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모든 대파가 월동이 되는 건 아니고, 우리 대파는 월동이 안 되는 대파여서 겨울철 동안에는 비닐로 덮어 월동을 해 주었다.)
당근
이 당근을 뽑은 사진이 없네요. 진짜 한 차 나왔는데
작은 당근만 봤던 지난가을과는 다르다. 당근이 얼마 나크고 많이 자랐던지.. 며칠 동안 당근주스를 해 먹고도 당근이 정말 많이 남았다. 향긋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연작 피해와 병충 피해가 없는 작물이라 잘 큰 것도 있지만, 한 해가 지나는 동안 흙을 열심히 가꾸어 두었더니, 전체적으로 결실이 좋아지는 게 눈으로 느껴진다.
옥수수
옥수수는 대학찰옥수수랑께~
옥수수는 다른 집 옥수수들과는 다르게 너무 난쟁이 같이 자라서 실망과 걱정이 있었다. 근데 웬걸! 옥수수 자체는 정말 찰지고 맛있었다. 윗집에서도 옥수수를 많이 땄다고 나눠 주셔서 잘 먹었는데, 윗집의 크고 단단한 옥수수도 맛있었지만, 좀 작아도 찰지고 달콤한 우리 옥수수가 역시 감동적인 맛이었다. 내 입맛에는 역시 대학찰옥수수 품종이 맞는 것 같다.
딸기
올해는 첫 해라 큰 수확은 없었지만, 수확 이후 줄기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내년에는 더 많고 큰 결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애호박과 오이
사실 이 녀석이 제일 작은 애호박. 대부분 다리통 만함
애호박은... 정말 무섭게 큰다. 애호박은 함부로 여러 줄기 키울 필요가 없다. 너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너무 거대하다. 오이는 이번 해에는 좀 망했다. 그래서, 다시 씨앗을 심어서 모종 하나 살아남았는데, 잘 크고 있다. 아쉬운 건 딱 먹기 좋을 때 딸 수 없다는 것. 애호박과 오이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곳에서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단호박
단호박은 정말 제대로 잘 자랐다. 호박 종류는 실패가 없다.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잘 컸고, 요리나 간식에 다양하게 잘 쓰고 있다.
키울 때는 퇴비를 두둑이 잘 줘야 잘 크는 애들이라 퇴비는 신경 써 줬다. 흰 가루병이 조금 생겨서, 잎을 잘 쳐주고, 통풍이 잘 되게 가지 정리, 곁순과 줄기 정리를 해 줬다. 단호박은 씨앗을 산 게 아니라, 2년 전에 단호박을 사서 먹고 받은 씨로 그냥 심어봤는데, 정말 잘 자란다. 그때 받은 씨앗은 아직도 많다...
방울토마토
이것도 씨앗이 한 2-3년 된 걸로 시도해본 건데, 엄청 잘 자랐다. 28 점박이 무당벌레가 이파리를 잘 먹어치우는데, 잎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여서 일까? 크게 피해는 없었다. 방울토마토는 비가 오면 잘 무르기 마련인데, 곁순과 잎 정리로 통풍에 신경을 써 줬더니, 지지대가 무너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틀밭 두 곳에 심었는데, 마켓 컬리 종이 박스로 거의 여섯 박스 이상 나온 것 같다.
너무 수확 양이 많아서 주스를 해 먹는데 2리터 병으로 5병 이상 만들었다. 토마토 자체도 너무 달고 맛있어서 좋았지만, 주스로 만들어먹으니 이 역시 환상적이다.
그 밖에도 많은 작물들을 성황리에 잘 수확했다.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여름이 그렇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무, 쪽파, 대파 씨앗과 모종들을 차근히 심으려 한다. 배추는 모종을 내고 있는데, 9월 정도에 심으려고 준비 중이다.
작물들이 쑥쑥 클 때는 정말 할 일도 많아서, 하루 종일 밭에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차 일하는 시간이 줄고 있다. 물론, 잡초 뽑는 시간은 줄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