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주말마다 비가 왔다. 그리고 여름이라고 해도 될 날씨 덕분에 작물도 무럭무럭 커갔다.
그러고 보니, 양평에서 5월에 작물을 키우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작년에 실패했던 경험이 개선 되긴 어려웠다.
5월도 네 번의 주말을 지나, 6월의 첫 주말. 그리고 두 번째 주말.
(이 글은 6월의 첫 주말과 둘째 주말에 이어서 쓰는 글이다.)
모든 작물은 참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농약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굴 파리나 벌레 먹은 이파리도 찾기 어려웠다. 조금 나중에 추측하건대, 우리가 농약을 쓰지 않으니 참개구리들이 우리 텃밭에서 서식하게 된 것 같고, 그 덕분에 굴 파리나 일부 벌레들은 참개구리의 좋은 먹이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참개구리는 우리가 벌레나 곤충이라고 칭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먹이로 삼는다. 심지어 도마뱀도 먹는다고 한다.)
참개구리는 서식 영역이 넓지 않다. 그래서 농막 주변에서 개굴개굴 소리가 난다면, 그 녀석은 '가족'으로 보아도 된다. 멀리 떠나지 못할 테니까. 나는 그 녀석의 이름을 '참농부'라 지어주었다. 벌레를 해치워주는 농부 참개구리라는 의미로. 오다가다 밭에서 만나면, "어이~ 참씨." 하고 부르곤 한다.
감자도 정말 엄청 자랐다.
밭 안에서는 이미 감자 정글이다. 그래서일까, 감자밭 안쪽 그늘에는 버섯까지 넓게 자리를 잡았다.
감자꽃도 피었네요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들은 정리를 해준다. 흙이 들썩들썩한 것 보니, 그 안에 굵은 감자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6월 말이면 맛있는 감자를 맛볼 수 있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북주기를 해 주었다.
옥수수도 뿌리가 조금 드러났길래 북주기를 해 주었다.
맨 아랫 농막의 텃밭에 옥수수는 벌써 4~5학년이 된 듯하다. 곧 졸업할 아이처럼 듬직하게 커가고 있는데, 아직 우리 옥수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몇 미터 더 산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고 이렇게도 성장이 다를까. 과외를 시키듯 퇴비를 더 얹어야 하나.
인적이 없으면, 사람만큼 크는 잡초
2주 정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농막에 못 왔었는데, 작물 영양분 뺏어 먹고 자란 건가 싶을 정도로 잡초도 자라 있었다. 여기저기 얼마나 자랐던지. 토요일의 반나절은 잡초 뽑는데 시간을 보냈다.
구거 쪽에도 풀이 꽤 많이 자랐길래 잡초의 꽃들도 베어주었다. 꽃이 지고 씨앗이 날리면 또 내년에 성가셔지니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
그 덕에 구거에서 누룩뱀을 만났다. 사진을 올리면 놀라는 분들도 있을 테니, 사진은 생략이다. 누룩뱀은 마치 악어가죽처럼 베이지색과 고동색으로 얼룩덜룩 무늬가 있고, 머리가 세모난 독이 없는 뱀이다.
녀석, 꽤나 놀랐나 보다. 나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서 이리저리 피하더니 구거 석축 구멍으로 쏘옥 들어갔다. 사실, 나도 많이 놀랐는데.
당근은 솎아줄 때 미련을 갖지 말자
아내는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솎아주기를 해주었다. 그중에 당근은 그 모습도 귀엽다.
솎아줘도 또 이만큼 자라고
당근을 솎아줄 때는 좀 아까운 마음도 드는데, 그런 생각 말고 과감하게 뽑아야 한다. 그렇게 뽑아도 다음 주가 되면 언제 솎았냐며 또 그만큼 자라 있다. 그리고 잘 자란 당근은 정말 단맛이 난다. 아 이래서 당근이구나. 달다 달아. 향긋한 당근 향기가 진하게 풍기고 그 뒤로 밀려오는 단맛이 정말 좋다. 마트에서 사 먹는 당근과는 비교가 안되지.
또 솎아줬는데 이정도
나물은 그늘에서 키워야지
참나물과 취나물은 정말 자라질 않는다. 원래 약간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나물일 텐데, 너무 햇빛 가득한 곳에 씨앗을 뿌려서 그런 건 아닐까 하여, 코이어 네트로 그늘망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귀엽게만 자라고 있었던 마물들
코이어 네트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보기에는 예쁘지 않다. 만드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늘망을 지지해 줄 나뭇가지 구하려고 구거에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몇 군데 몸을 긁히고, 다시 누룩뱀을 만날까 봐 아픈데도 정말 순식간에 벌떡 일어났다. 근처에 아무도 없었기에 참 다행이었다. 그 꼴을 아내나 딸이 보았다면 깔깔 웃었을지도 모른다.
상처 끝에 엉성하게 만든 나물 밭이니, 나물들아 부디 잘 자라 다오.
내년에는 구거 건너편 그늘진 산비탈에다가 나물 밭을 만들어야겠다.
하루 지나서 보니, 코이어 네트가 효과가 있나 보다. 움츠렸던 나물이 조금 일어서서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와~ 대파. 와~ 진짜 최고
개인적으로 대파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작년에 거의 망해서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했었다. 그랬던 대파는 양평에서 겨울을 났고, 이번 봄에 옮겨 심어주었다. 그렇게 비실했던 대파가 올해는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덕분에 농막에서 요리를 해 먹을 때마다 향긋한 대파를 양껏 넣고 맛있게 먹고 있다.
두꺼운 부위를 어금니로 꽉 깨물었을 때 나오는 약간 진득한 파즙이 고기와 섞여 입 안에 맴돈다. 다른 양념이 하나도 필요 없다. 대파와 고기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향미를 선사하는 요리가 된다.
대파 오리고기 볶음 냠냠
씨도 잘 받아야지
마트에서 사 온 파는 화분에 심어서 꽃이 나와도 씨앗이 여물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대파 밭에서는 화분 수정이 잘 되어서인지, 씨앗이 까맣게 잘 여물었다. 이 씨앗은 잘 받아서, 가을에 또 심어야겠다.
이렇게 빨간 앵두
딸아이가 작년부터 노래를 불렀던 앵두가 빨갛게 열매를 선사했다. 알알이 많지는 않지만, 어렸을 적 형이랑 함께 따 먹었던 그 앵두의 맛 그대로였다. 딸아이는 신기한 듯 조심스레 앵두를 땄고, 먹고 난 씨앗은 고이 잘 보관을 했다. 그 씨앗이 다시 싹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딸이 크더라도 그 추억은 딸아이의 마음에 싹으로 무럭무럭 자라겠지 하고 생각하니 흐뭇해졌다.
작은 꽃밭을 새로 만들었어요
작은 꽃밭을 추가로 만들어주었다. 아직 심을 꽃도 별로 없다. 우린 모종을 사지 않고, 거의 대부분 직접 씨앗을 뿌리고 육묘를 해서 키워 옮겨 심고 있다. 그게 꽃이든, 작물이든 가능한 것들은 되도록이면 그렇게 하고 있다.
아내는 샐비어(어른들은 사루비아, 사르비아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샐비어라고 한다), 샐러리를 심어주었다. 샐비어는 다이소에서 씨앗을 샀는데, 그 많은 씨앗을 뿌렸는데도 달랑 3개만이 싹을 틔웠다. 역시 저렴한 씨앗은 성공률이 높지 않다.
에필로그
주말마다 양평에 와서 밭 일을 하고 있지만, 글로 쓸 만큼 소재거리가 많지는 않다. 왜냐면 매번 같은 일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는 일도 그렇고, 농사일 밭일을 하는 것도 매 한 가지다. 새롭게 계획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는 이상은 같은 일의 반복을 하며 아주 조금씩 개선을 하거나, 선택과 집중을 한다. 회사일과 농사일이 다른 거라면, 이 일의 '진짜 주인'이라는 의식 정도일까?
밭 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저녁까지 일하다가, '이런 열성으로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회사 일에 사소한 것까지 계획하느라 평일과 주말의 남은 나의 시간을 일에 쏟아부을 때는, '이런 계획성과 점검의식으로 밭 일과 농막 정비를 하면 더 멋진 공간과 결실을 얻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내가 가진 열정을 100%에 가깝게 쓸 줄 알았다.
막상 그 일을 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120%. 또는 그 이상을 쓴다. 그런데, 결국 이 역시 '일'의 일부가 되어 거의 비슷한 비중의 에너지를 쓰거나, 한쪽으로 치우쳐도 합치면 100%가 되는 넘치지 않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100%로의 회귀
그건 맞기도 하지만, 또 틀리기도 하다.
지금의 100%는 예전의 100%보다 더 큰 100%이다. 그게 도드라져 보일 만큼이 아니라, 예전의 100%보다 1%, 2% 정도의 큰 100%이다. 그래서, '난 또 쉽게 싫증을 냈구나. 난 또 되돌아왔구나' 하고 느끼게된다.
혹시 그런 기분을 느낀다면,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잘 커가고 있는 것이라고.
자책하는 당신은 이미 성장을 맛보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가 좀 지루하고, 진지해졌는데
어쨌든 나에게 텃밭 농부라는 부캐릭터는 매우 소중하다. 그게 오늘의 내가 참 싱그러운 사람이 되게 해 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