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이기적으로 살겠습니다
“책을 아홉 권이나 출판하셨다고요? 대단하세요.”
“인세나 강의로 돈 좀 버셨겠어요.”
“쓰신 책 중에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인가요.”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어물쩍 요령 있게 잘 넘어간다. (물론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 번째 질문의 답변은 여전히 난감하다. 왜냐하면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베스트셀러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뼈를 때리는 팩트이기는 하지만 사실이라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책을 정말 열심히 썼다. 나의 모든 감성을 영혼까지 긁어모아 에세이도 출간하고, 10여 년 넘는 편집자 커리어로 다져진 콘텐츠를 바탕으로 자기계발서도 멋들어지게 출판했다. 심지어 많은 작가들이 내고 싶지만 한껏 망설이게 되는 글쓰기 책까지 서점 매대에 올려놓았다.
이쯤 되면 내 나이만큼이나 출판계에서도 중견 작가쯤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작 작가 이미지를 향한 걱정도 있겠지만 이미지 따위가 ‘뭣이 중헌디’ 싶다. 쓰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열심히 쓸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굳이 그 감정을 숨기고 싶지도 않다.
“작가님, 대표작이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살짝 머뭇거리게 된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중쇄를 찍은 책은 몇 권 있지만 과연 나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나무막대기라도 있으면 모래 바닥에 낙서하며 고민하고 싶어진다.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제 주저 없이 하게 된다. ‘작가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답변은 왜 이렇게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늦가을녘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마냥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굳이 아닌 척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욕심이 생기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이게 사람의 본심인 것을.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을 단 분들을 보면 괜히 미워지고 그 책을 사서 읽을 때면 잘 썼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심술만 나기 마련이다. 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존감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또 들린다.
물론 누군가는 그만큼 책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다른 식으로 격려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눈은 앞만 보고 달리라고 앞에 달려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앞사람만 보게 된다. 뒷사람을 보려고 하면 고개를 돌리는 데 힘이 들어서 그런 걸까. 이게 사람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란 말인가. 여전히 나는 노란 빛깔로 가을을 풍성하게 만드는 잘 익은 고개 숙인 벼의 가치를 익히지 못한 것일까.
“조앤 롤링은 12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하잖아요. 《해리 포터》도 그 정도로 많이 거절당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 기다려야겠지. 그 기다림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더욱 나답게 발굴해 내어 세상에 빛나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와르르 산사태처럼 무너졌던 자존감에 실낱같은 반전이 생기는 것도 같다.
곧 나도 그 말을 들을 수 있겠지. “베스트셀러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 말이 참 듣고 싶은 어느 휴일 새벽녘이다. 한 글자라도 더 써야 언젠가 들을 수 있는 말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