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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15. 2018

01.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네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한창 ‘잘 살아보자’라고 외치던 1970~1980년대가 지나면서 사회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즐길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중문화의 열기가 확산되고, 세련된 패션을 향유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났다.     

마흔을 전후로 하는 세대에게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3부작’은 추억을 공유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특히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이미 대학생이던 삼촌, 이모들의 어른 문화와는 다른 옛 생각을 많이 소환했을 것이다.     


“어릴 적 양옥집으로 이사 갔을 때 드디어 내 방이 생긴다고 참 좋아했는데.
안방 다음으로 큰방은 당연히 내 차지였지.”
“오빠 때문에 난 매번 작은방만 썼잖아.
그래도 같은 방 안 쓴 게 어디야 싶었으니까.”     




최근에 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내 방에는 꼭 있었던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제대로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책장 한 공간을 묵직하게 차지하던 위인전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랬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꼭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곤 했다. 또한 닮고 싶은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수업시간 중에든, 쉬는 시간에든, 특별활동 시간에든.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로는 왕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장영실, 퇴계 이황, 유관순, 도산 안창호, 방정환 같은 분의 위대한 스토리가 각각 한 권의 책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의 워싱턴, 링컨, 영국의 처칠 등을 비롯하여 나이팅게일, 베토벤, 퀴리 부인, 디즈니, 아인슈타인 등의 이야기로 넘실거렸다. 이들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다 품고 살아왔을 테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당당히 이겨내어 성공을 거머쥐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참 좋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철두철미(徹頭徹尾), 솔선수범(率先垂範), 언행일치(言行一致), 대기만성(大器晩成), 살신성인(殺身成仁) 등 위인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는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맹자》도 다양한 인물이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칭찬하고 백성의 본보기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위인들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살아야지. 성공해야지. 1등이 되어야지. 남을 위해 살아야지’ 하는 마음가짐을 가슴에 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꼈다. 내가 그러한 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왕건처럼 나라를 일으켜 세울 리더십도 없고, 세종대왕처럼 밤잠도 자지 않으며 백성만 생각할 덕(德)도 갖추지 않았고, 도산 안창호같이 나라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용기도 선뜻 들지 않는다. 베토벤처럼 천재도 아니기에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도 없으며, 나이팅게일처럼 천사의 마음을 품지도 못한다. 그냥 나는 민초일 뿐이라는 것을 꽤 빨리 깨우쳤다.     



어찌 보면 나에게는 견물생심(見物生心), 시행착오(試行錯誤), 용두사미(龍頭蛇尾),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격지심(自激之心), 주마간산(走馬看山), 중구난방(衆口難防), 침소봉대(針小棒大) 같은 사자성어가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더 편하게 풀자면 ‘어쩌라고’, ‘나도몰라’, ‘그냥살래’, ‘힘든하루’, ‘답이없어’, ‘그래서뭐’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나는 ‘그냥 마흔’이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력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좀 있어 보이는 마흔’이 아니다. 마흔이 되었을 때 공자가 체험한 일이라고 하니 나와는 더욱 다른 B612 행성에 살던 어린 왕자 이야기쯤 되려나.     



남들 과장일 때 이미 부장쯤 되어야 하고, 아니 오히려 임원이 못 되었다고 신세 한탄하고(평생 스트레스 속에서 살더라도), 통장에는 현찰 1억은 있어야 하고(빚이 5억이고), 아이들은 해외유학 정도 보내야 하고(부모의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는데), 이런 지표가 성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위인전을 읽으며 그렇게 살아서 빛이 나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 빛이 더욱 빛나려면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기 위해 상대를 힘겹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빛이 옅어지더라도 그림자와 공존하면서 살고 싶다.     


빛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빛나면 빛날수록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옛날 동화를 조금 현실적으로 재구성해보자면, 바람과 내기를 했던 해님이 행인의 겉옷을 벗게 하기 위해 더욱 강한 빛을 쪼였다고 하는데 그럼 그 행인이 일사병과 탈수로 쓰러지지나 않을는지, 강한 자외선으로 피부가 손상되지는 않을는지 걱정일 것이다.


남들은 내가 마흔인데도 아직까지 그러고 사냐고 손가락질하거나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세상에서 내가 제 일 행복한 사람인데. 내가 정해놓은 가치만큼 충분히 행복한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치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더라.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다. “행복하세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해서 일상적인 질문을 건넨다. “잘 지내니?”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못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어.”


내 삶을 천국이라 여기니 모든 것이 천국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매일이 지옥이라 생각하면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내 삶인데.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남 들이 보기에)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보기에 이미 나는 넘치고 넘치도록 다 해놓고 충분히 누리고 살고 있다.      


                                            내 삶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참 좋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아랫사람의 목소리를 들어 명군이 되다


孟子曰: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맹자왈: 애인불친 반기인, 치인불치 반기지, 예인불답 반기경.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행유부득자 개반구저기 기신정이천하귀지.           



뜻풀이      
맹자가 말했다. “남을 사랑해도 친하게 되지 않거든 인을 돌이켜 보고, 남을 다스려도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그 지혜를 돌이켜 보고, 남에게 예를 다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함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행하고도 얻지 못하거든 모두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하니 자신의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다.” 
                                                                                                                                                  — <이루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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