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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22. 2018

02. 마냥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더없이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다. 농업이 중심인 사회일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 정도와 경쟁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경쟁이라 해도 “이번에는 ○○네 집에 풍년이 들었대요. 좋겠네요” 정도의 애교성 질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사회이다. 내 나라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누군가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코리안 시티즌(Korean citizen)이 아니라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이 되어버렸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고공행진하면서 심지어 ‘나’는 로봇이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지능과도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학력 인플레이션도 심해졌다. 한때는 대학 졸업만으로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박사 학위를 받고도 취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지방 9급 공무원 모집에 박사 출신들이 많이 지원했다는 신문 기사는 이제 대수롭지도 않다.     


한창 경제 성장을 이룩하던 당시에는 ‘원더풀 코리아’를 외쳤는데, IMF 외환위기 및 리먼브라더스 금융 위기를 거치며 장기불황이 이어지자 이제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만 넘실거린다. 교육을 위한 투자 대비 취업률 및 연봉 비율을 고려해보아도 갈수록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학자금 대출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해를 넘길수록 높아만 가고 있다.     




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일까? 왜 체감적으로 좋아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는 것일까? 3040 캥거루족, 일할 의지가 없는 니트족을 넘어 은둔형 외톨이마저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절망하며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정말 말 그대로 그렇게 된다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었는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지라도 이제라도 뭔가 해보면 어떨까. 2009년 UN이 머지않아 100세 시대가 보편화될 것이라 발표하면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를 외친 바 있다. 우리도 시대에 맞춰서 건강하게 잘 살아야(living well) 할 것이다. 단순히 오래 사는(living longer) 것이 아니라.



칭찬은 김 과장도 춤추게 한다     


지금 시각은 새벽 5시 15분. 아직 해도 눈을 뜨지 않았고 만년 과장 김 과장 역시 그러한데 알람 소리는 15분 째 울리고 있다. 하지만 ‘이불 밖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불킥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어나야 하는데, 지각은 안 되는데.’ 머릿속으로는 열두 번은 벌써 일어났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그러지 못한다. 여전히 꼼지락꼼지락.     

어제가 아니라 오늘 새벽 2시에 퇴근해 집에 오니 2시 40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잠들어 있으니 침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자야만 했다. 발자국 소리에 깰까봐 조심스러웠다. ‘아내도 야근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나보다는 일찍 들어와서 다행이군.’ 속으로만 되뇌었다. 김 과장은 몇 시간 잠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또 일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김 과장이다.     


겨우 씻는 둥 마는 둥 하며 출근했다. 서류 가방은 제대로 챙겼는지 모르겠다. 혹시나 지난번처럼 구두를 짝짝이로 신은 건 아닌지…. 얼핏 발끝을 내려다보니 구두는 문제없었다. 그런데 양말이 짝짝이였다. 물론 어차피 흰색이니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바지 끝을 주섬주섬 좀 더 아래로 당겨보았다. 보이지 않을 거라 확신하면서.     




이어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홀짝거리며 마신다. 머릿속은 매직아이처럼 뱅뱅 돌고만 있다. 회사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8시 45분이었다.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최 팀장의 호출이 이어졌다.     


그는 김 과장보다 2년 후배이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눈치가 100단에,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래도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는 만큼 언어가 중요했는데, 영어는 기본이었고 일본어도 할 줄 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팀에 오려고 중국어까지 입사 때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현장 업무가 조금 약하다는 말은 있지만, 그래도 잘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최 팀장이었다.     


“김 과장님, 회의 준비 다하셨지요? 오늘은 특별히 본부장님도 참석하시는 거 알고 계시죠?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 저희 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내가 새벽까지 일한 건 알고나 있을는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준비한 대로 하지 뭐.’ 


이렇게 중얼거리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는 무사히 마쳤다. 본부장은 여러 번 미소를 띠었고, 마지막에는 박수도 이어졌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최 팀장이 김 과장에게 한마디 던진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김 과장님 덕분입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준비하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김 과장은 만감이 교차했다. ‘다 알고 있었구나. 나는 왜 모르고 있다고 투덜거리기만 했을까. 나보다 후배인데 승진 먼저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걸까. 회사도 알고 있는 걸까. 최 팀장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나보다 이것저것 준비도 많이 하고 유능한 데다 성격도 좋다는 것을? 회의 중에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날 칭찬까지 해줬으니. 드라마에서나 보는 멋진 실장님이랑 다름없네.’     


다시금 꼼지락꼼지락.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새벽 5시 15분. 알람이 따로 필요 없는 것만 같다. 나는 이런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게 꿈이었다니.’ 며칠 전 있었던 회의 장면과 거의 데자뷔였다.     


오늘은 알람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켜놓지를 않았으니까. 마음 편히 쉬려고 며칠 휴가를 냈다. 최 팀장도 별 말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잘했으니까. 멋지게 해냈으니까. 잘해냈다는 달콤함이 꿈에까지 이어지다니. 더없이 행복하게 눈을 떴다.     


이제는 직장생활이 조금 더 나아지리라. 나도 충분히 가치 있는 직원이자 잘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내년에는 만년 김 과장이 아니겠지? 승진은 할 수 있으려나. 물론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그를 살아 있게 했다. 


칭찬은 고래뿐 아니라 김 과장도 춤추게 했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새싹을 잡고 뽑아버리면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천하지불조묘장자과의. 이위무익이사지자 불운묘자야.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조지장자 알묘자야. 비도무익 이우해지. 


뜻풀이      
새싹이 잘 자라기를 바라며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 방법으로) 도와주지 않는 자가 천하에 드물다. 이로움이 없다고 하여 (호연지기를) 버려두는 자는 새싹을 김매지 않는 자요, (억지 방법으로) 도와주는 자는 모종을 잡고 뜯어 올리는 자다. 이렇게 억지로 돕는 것은 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새싹을 해치는 것이다. 
                                                                                                                                               — <공손추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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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jeremy.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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