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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연극배우 B씨
Sep 26. 2021
참지마, 눈물이든 웃음이든
이혼 후 이야기 #. 60
엄마!
왜 이렇게 쪼꼬매?
마트를 갈 때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아이들은 으스대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아이 둘은 이제 나보다 키가 크다.
겨우 내 허리춤까지 오던 작고 여린 공주들
이었지만
이제는 내 양옆에서 나를 호위하듯 함께 걷는다.
세상 어느 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더 든든한 것이 없다.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살아온 지난 11년의 세월 동안
나는 세상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과
애쓰며 찾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쌀과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것
이
있고
그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뙤약볕을 고스란히 머리에 이고
턱밑으로 떨어지는 굵은 땀을 훔치며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도록 설계된 걸까?
가끔은 억울했다.
사십여 년 전
가난했고 가냘펐던 우리 엄마 뱃속에서 나와 두 주먹을 꽉 쥐고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
렸
던 아기가
이런 삶을 살도록 정해
졌던 것일
까...
이제는 한숨 돌릴 만큼 살만해진 건지,
나는
문득문득 이런 것들이
궁금할 때가
있
다.
아들이 귀했고 '쓸데없는' 딸들만 줄줄이 태어났던 우리 집에서 나는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주제넘은 소망보다 '미움을 받지 말아야겠다.'라는 절박함이 컸었다.
내가 집안일을 잘하면 엄마가 기뻐하고, 밖에서 인사를 열심히 하면 동네 어른들이 칭찬하는 그런 일들이 유일하게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나는 튀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당신은 왜 나랑 결혼했어?"
"어머니 모시고 살 수 있다고 해서."
전
남편은 그야말로 효자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없으면 불편해지는 마마보이였다.
영혼이 순수하다 못해 맑은 지리 국물 같아서 임기응변이나 거짓말에 약했다.
주변에서는 그래서 사람 좋다고 칭찬을 했다.
신혼시절 그 흔한
'당신 아니면 안 돼서'
'당신이 이뻐서'
라는 표현 없이 곧바로 '어머니'라는 솔직한 이유를 말해줬던 전남편의 대답에 나는 한 번도 서운하다고 속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 대답은 나를 서운하게 한다고, 내 마음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내 기분이 고체인지 액체인지, 날아가고 없는 수증기인지 전남편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정확히 콕 찍어서 이야기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시작했던 사회생활, 가족조차 '쓸데없는' 것이라고 불렀던 보잘것없는 존재였던 나는
내 것을 주장하기보다는 손해보고 양보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작한 결혼생활조차 내가 잘 감당해야 하는 직장생활 혹은 숙제 같은 것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착하게 잘 수행해내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이 숙제를 다 끝내고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답답했던 순간에도
'다들 이러고 살겠지.'
억울하고 힘들었을 때도
'오늘만 이렇겠지,
'이번은 특별한 경우겠지.'생각하는 게
편하고
쉬웠다.
"남자는 바깥 생활하다 보면 한 번쯤 한눈팔기도 한다."
"우리 아들이 그럴 애가 아니다."
"네가 얼마나 냉랭하게 대했으면 아비가 저러냐."
"올케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더 못 봐주겠네."
"우리 집안 무시하면
우리 엄마 뒷방 노인 취급하면 아무리 올케라도 안 봐줄 거야."
"애들이 누굴 더 사랑하는 줄 알아?
아빠인 나를 더 사랑해!"
"당신은 엄마자격이 없어. 당신만 나가면 돼."
"
애들은 절대 안 줘."
"당신만 나가."
"너만 나가."
"너만 이 집에서 나가면 돼."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 말이 나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내가 얼마나 슬픈지
구정물 같은 그 말들이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가슴으로만 흐르던
내 눈물을 보여주지 못했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거야."
나와 성별이 같은 내 아이들이 혹시나 엄마 성향의 반을 닮았을까 봐
혹시나 나처럼 미련하게 참을까 봐
어렸을 때부터 늘 이야기했다.
"눈물은 좋은 거야. 그건 흘려야 맞는 거고 참을 필요가 없어. 마음이 슬퍼서 눈물이 나거나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날 때는 펑펑 우는 게 맞아~."
"소변 마려우면 참을 수 있어? 잠깐은 참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오래 참으면 어떻게 돼? 병나는 거야. 몸에는 당연히 좋지 않아. 눈물도 그런 거야. 눈물을 참는 건 몸에도 마음에도 좋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아이들 앞에서 잘 울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일자로 굳어진 입술을 애써 꽉 붙들고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던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에서 어린 내가 가졌던 묘한 안도감을 기억해서일까?
엄마가 울면 어렸던 나는 불안했을 것 같다.
내가 마주치지 못한 찰나에 엄마는 수없이 많은 울음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겠지만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감정을 뱉는 연습이 되지못했던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또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내 감정이 존중받지 못했듯
눈물 또한 이해받지 못한 날들이 많아서 지금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감동적인 것과 슬픈 것을 보며 펑펑 울고
재미있고 웃긴 것에는 손뼉 치며 박장대소하고
그렇게 내 속에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나보다 더 커버린
이제 더해 줄 것이 없어 보이는
다 큰 아이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말이다.
아이들은 코믹댄스를 곧잘 흉내 내고 그것을 보며 깔깔대는 내 표정을 좋아했다.
아이들의 권유로 가끔은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우린 동영상으로 찍었고
서투른 엄마의 춤사위를 보며 광대뼈가 얼얼하도록 웃는 것은 여자 세명이 사는 우리 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엄만 진짜 몸치야!
승부욕 강한 나지만
그 소린 기분 나쁘지 않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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