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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Jul 18. 2023

편리한 세상

OTT 이중 구독 취소 실패자의 단상

편리한 세상


무려 1년 반 동안 나는 한 OTT서비스를 이중 결제하고 있었다. 프라임 비디오가 월 3500원의 저렴한 구독료로 모객을 할 때 가입했던 난, 거의 보는 게 없는 데도 불구하고 프라임비디오의 회원을 유지했다. OTT구독은 직업적 투자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곧 프라임비디오가 구독료를 올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해지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구독하기엔 지금의 싼 구독료가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7유로의 해외 결제 문자가 날아왔다. amazon이라고 찍혀서. 누군가 내 계정으로 결제를 한 걸까? 나는 결제 문자를 준 카드 회사로 전화를 하고, 아마존 닷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내 내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기에 미국 담당자와 긴 채팅을 하고, 프라임 비디오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고, 그러고도 수확이 없어 애플 아이디의 구독 리스트를 확인하고, 그렇게 일일이 기술하기도 싫은 여러 과정을 두어시간 겪은 끝에 알아냈다. 아마존 프랑스 계정으로 내가 1년 반전에 프라임비디오를 구독한 내역이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 즈음에 프랑스어 책을 아마존 프랑스에 가입해서 산 적이 있다. 그러나 프라임 비디오 구독을 한 적은 없다. 그럴 일이 있을 리가 있나 이미 구독중인데.


 그래, 많이 양보해서 무심코, 홍보 창을 무시하려다 구독을 눌렀다고 치자. 이렇게 쉽게 구독이 되는 게 말이 되나, 라고 생각하며 구독 취소를 눌렀더니, 애플 아이디로 가서 구독을 취소하란다. 애플 아이디로 가니, 한국 구독 내역만 확인되고 프랑스 구독내역은 찾을 수 없어 취소가 안 된단다. 더 쓰기도 답답한 몇 번의 과정을 더 겪고 나는 완전 그날 반나절을 다 날리고 그로기 상태가 되어 이중 결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사실상 환불을 받아야 할 상황인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카드의 해외 승인 자체를 취소하는 일이다. 그럼 아마존 프랑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해외구매도 이 카드로는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도 그 방법밖에 없다.


 세상은 엄청나게 편리해졌다. 내가 소비자의 정체성일 때는. 그러나 소비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편리는 역으로 나를 공격해온다. 세상은 내 돈을 가져가는 방식을 편리하게, 돌려주는 방식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소비자로서 느끼는 편리, 혹은 자유는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소비자가 아닐 때 세상은 우리에게 불편을 경험하게 한다.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그 밖에 여러가지 정체성을 품고 느낄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하게 빠르고 정확한 보상을 주는 정체성은 소비자 정체성이다. 우리는 노동자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지난한 과정을 겪고 성취에 곧잘 실패하지만 소비자로서는 편리하고 쾌적하다. 소비자 정체성으로만 세상을 살 수 있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쾌적할까. 건물주나 자본가들은 그런 삶이 가능할까. 글쎄.


  우리는 이 편리한 소비자로서의 정체성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으며, 더 높은 소비 계급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인생을 쾌적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소비자 정체성에서 한 발짝 비껴나는 순간 그 쾌적과 편리는 놀랍도록 순식간에 사라진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는 모든 과정이 소비와 결합할 때 쾌적해지고, 소비와 분리될 때 힘겨워진다. 그런데 이 결합 방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충만하게 하는가. 소비자가 아닌 나는 누구인가. 소비자인 나는 또 누구인가.


 결국 나는 이중 구독의 사슬도 끊지 못한 어리석은 소비자로서 실패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심코 나와 연관이 있는 광고에 따라 티셔츠를 결제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이 기분이 온당한 기분인가.


 내 정체성의 범위와 한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결국, 자본주의와 계급을 생각한다.


소비자가 아닐 때에도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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