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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y 22. 2019

브라질의 시작이 이토록 우울해서야

브라질_리우 데 자네이루

지난 저녁, 리우 데 자네이루에 도착해 예약해 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주변 빵집에서 산 몇 개의 빵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쉰다는 것이 눈을 뜨니 다음 날이 되어 있었다. 이틀 차이지만 사실상 리우 데 자네이루의 첫 번째 날이다. 고민했다.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첫 번째 날은 숙소에 머물며 혼자만의 적응의 시간을 가질 것인지, 일단은 나가볼 것인지. 고민은 길지 않게 끝났다. 


누운 채로 손을 뻗으면 천장에 손끝이 닿았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힘든 3층 침대의 꼭대기가 내 자리다. 어디서든 쉽게 침대와 정 붙이고 머물러 있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그것이 힘들었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천장의 압박감은 기어코 나를 침대 밖으로 밀어냈다. 방에서 나와 로비로 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리는 꽤 있었지만 아침부터 많은 여행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낯설고 시끄러운 음악이 계속됐으며 담배연기마저 끝이지 않았다. 결국 떠밀리듯 숙소에서 나오고 말았다. 


숙소에서 두 블록을 내려간 큰길에는 예쁘게 단장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어디든 들어가면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가난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어디든 들어가게 되면 남은 기간 동안의 기본적인 것들마저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두 발은 가게들을 스쳐 지나갔다. 길 건너편에는 3km에 달하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펼쳐져 있다.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이파네마와 함께 가장 유명한 해변이다. 이렇다 할 해변이 없는 남미에서는 어쩌면 이곳이 남미 최고의 해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물놀이, 공놀이를 하고 일광욕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맑은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 아래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단 한 사람, 나를 제외하고. 그것이 모래사장에 대한 예의인 듯 신발 속으로 침투하는 모래를 참으며 백사장을 걸어도 보고, 그것이 파도에 대한 예의인 듯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는 척하며 슬쩍 젖어보기도 했지만 흥이 나질 않았다. 흥과 열정과 즐거움이 가득해 보이는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나 혼자 쓸쓸했다. 이질적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의 분위기에 동화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이 즐거운 해변을 견딜 수 없었다. 


해변을 견딜 수 없었지만 딱히 떠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를 쓸쓸하게 만드는 해변과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레스토랑 사이에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이 길 위에선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찢어서 들고 나온 가이드북을 보다 세라론 계단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의 부정확한 정보를 보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꽤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다행히 정류장에 대략의 노선도가 나와 있었다. 일단 근처로 가서 지도를 따라 헤매며 찾아가는 것이 내 방법이다. 특이하지만 못생긴 성당과 수도교를 대충 훑어보고 세라론 계단을 찾아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 오면 꼭 한번 들르라고 소개될 만큼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와야 되냐고 물어보면 글쎄올시다. 적당히 낙후된 동네의 적당한 계단에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들고 왔다는 타일을 나름 예쁘게 붙여놓아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기는 하나 애석하게도 내 마음까지는 유혹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곳에서도 왁자지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혼자 더 우울해지고 말았다. 무더운 날씨에 계단 중간에서 사 먹은 아샤이 아이스크림만이 내 마음을 조금 달래주었다. 


유명한 코파카바나 해변, 세라론 계단에서 좋지 않았던 기분은 그나마 지저분하기 그지 없는 한 시장에서 풀렸다. 점심을 해결하고자 돌아다니다 찾아낸 이 곳은 도매 시장인 듯, 경매가 끝난 것 같은 지저분한 풍경 속에서, 아마도 상인들을 상대했을 식당 한 자리에 앉아 간단한 고기 안주에 맥주 한잔을 겻들인 것이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고기가 예상보다 맛있었음은 보너스였다. 아침부터 들었던 쓸쓸하고 우울했던 기분과 한참을 걸어다녔던 고생을 보상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숙소가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 쪽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다시 우울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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