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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Jun 05. 2019

유유자적 부지오스, 파라찌

브라질_부지오스,파라찌

다른 나라로 떠나온 여행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날의 나를 많이도 괴롭혔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온 곳에서의 시간 낭비는 마음 한구석의 죄책감이 되어 쉬어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길어지는 여행에 ‘여행도 일상’이라며 휴식이 필요하다는 변명도, 쉬는 것 또한 여행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위로도 나의 마음을 온전히 편하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몇 번의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 이후에, 그리고 그러한 무활동 속에서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지긋한 죄책감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한 일정을 짜버렸다. 나의 남미 여행은 상파울루에서 끝나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다. 그날까지 일주일이 남아 있었다. 리우는 싫다. 리우는 브라질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어 가장 브라질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만 그 거대함과 복잡함 속에서 자꾸 소외되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남았던 아마존을 다시 찾아가 볼까? 브라질 북부까지 가기에는 내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상파울루도 리우와 다를 것이 없을 거라 예상했다. 견딜 수 없는 번잡함을 피해 부지오스, 파라찌를 가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채웠다.


부지오스(Armação dos Búzios)

리우에서 버스로 3시간, 부지오스는 나만 잘 몰랐을 뿐 해변과 휴양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은 마을에는 아담하고 예쁜 식당과 숙소들이 있다. 조금 비껴가면 소박한 해변들이 있다. 부지오스에서의 3일간 나의 일정은 걷다가 쉬고, 조금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걷는 것이다. 특별한 활동 없이 현지인들의 풍경 속에 nobody가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대충 깔고 앉아 넋을 잃고 바라볼 만한 멋진 풍경들이 많았다. 


혼자 바다와 산책을 즐기는 사이, 룸메이트의 제안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첫 번째는 맥주 한 잔, 두 번째는 파티참석, 그리고 바다였다. 계속되는 제안과 거부에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숨어있던 죄책감이란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도 했지만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을 회피했고, 혼자 바다를 즐기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의 막바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쥐어 짜내는 것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 속에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을 선택했다. 


부지오스


파라찌(Paraty)

버스를 타고 다시 리우로, 곧바로 다시 4시간을 이동 파라찌에 도착했다. 파라찌는 사진 한 장으로 나를 유혹했었다. 그것은 골목에 가득 찬 바닷물과 수면에 반사된 아름다운 집들을 찍은 사진이다. 보름이어야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했지만 다행히 이틀이 지난 후에도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는 그 모습은 한편으론 너무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것이 나을까? 불편하지만 그것으로 많은 관광객이 온다면. 


파라찌는 부지오스보다 더 작다. 가볍게 걷기만 해도 모두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골목을 채우는 바닷물이 아니어도 찾을만한 매력이 있다. 돌을 짜 맞춘 도로 옆으로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상점, 가정집들이 들어서 있다. 이질감을 줄 정도의 큰 건물 없이 그들끼리 비슷하게 어울려 있는 모습들이 귀엽다. 무엇보다 조용하다. 산책과 함께하는 사색을 방해하는 것이 별로 없다. 심지어 파도마저 잔잔하다. (사실 하루 종일 조용한 것은 아니다. 저녁에는 중심가 쪽으로 조금 떠들썩하긴 하다.) 

파라찌

부지오스와 파라찌에서 5일 동안 조용한 나날들을 보냈다. 이곳들이라고 액티비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을 하지 않아도 여유롭고 한적한 멋은 있는 곳이다. 브라질에 오기 전까지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한 곳들에 온 것은, 왠지 갑자기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이 싫어진 나에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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