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하여
한쪽 바퀴가 빠진 자전거가 가드레일 옆에서 삐걱거리고 있을 거고, 주인을 벗어난 바퀴는 안경과 함께 나뒹구르고 있을지도 몰라.
넌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냐.
그리고 어쩌면 우릴 탓할지도 모르지.
...
———
“어어 여기서 뭐 하세요.”
여행 내내 사람 좋은 티를 내던 진철이 자전거를 멈추며 반갑게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바퀴 튜브가 뒤집힌 것 같아서요.”
바닥에 앉은 사내는 창피하다는 듯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안경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아 그 민박 집에서 먼저 출발하시더니!”
자전거 속도를 줄이며 기훈도 반가운 양 말했다.
“아이고 아까 올라오실 때 고치셨다고 하시더니..”
진철은 자신의 자전거를 내팽개치더니 안경 쓴 사내 옆에 털썩 앉았다. 박진고개를 올라올 때 바퀴에 구멍이 나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늘에서 쉬시던 다른 라이더분이 에어 컴프레셔를 빌려주셔서 구멍을 어찌어찌 때우고 내려왔다느니, 영아지 고개까지만 넘으면 숙소가 나올 것 같아서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바퀴가 뒤집어진 것 같다느니, 픽업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연락처를 모르기도 하거니와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졌다느니 하는 얘기가 이어졌다. 진철은 자신의 자전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 쓴 사내의 얘기를 찬찬히 듣고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끝나고, 진철이 손을 걷어붙이며 ‘제가 에어 컴프레셔 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라는 말을 할 때까지도 기훈은 자전거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진철이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뒷바퀴를 잡고 나름의 진단을 내리는 동안 기훈은 지난 3일의 여행 동안 매번 목표했던 숙소에 도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페달질했던 야간 라이딩을 떠올렸다. 어두운 논밭길, 갑자기 그 어떤 것이 튀어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새까만 산길, 꺼져있는 수많은 가로등을 가로질러 달빛과 서로의 전조등에 의지하며 조심히 한 발 한 발 눌러 밟아야 했던 길을 떠올렸다. 매번 숙소에 겨우 도착했을 때 ‘다음엔 이러지 말자’, ‘좀 더 빨리 나오거나 시간을 단축시켜보자’, ‘이번엔 진짜 위험했어’라는 말을 서로에게 주고받던 모습을 떠올렸다.
“다 왔는데 아쉽잖아요.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부산인데.”
바퀴 안에 있는 튜브의 크기가 안 맞는 것 같다며 갸우뚱하는 진철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여기서 시간을 이렇게 쓰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우리가 도와줘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질문이 기훈의 머릿속에 들이닥칠 때쯤, 기름칠된 바퀴를 만진다고 온통 새까매진 진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진철은 그 손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쓱 닦았다.
“아니 내가 봤을 땐 일단 바퀴를 분리하고 튜브를 조정한 다음에 공기 넣고 다시 바퀴 넣는 게 맞는 것 같아.” 기훈이 자전거에서 내리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
... 괜찮겠지?
영아지고개가 제일 힘들다고 하던데.
...
지금까지 안 내려온 거면 애초에 안 올라갔겠지. 그만 가자. 더 기다려봤자야. 다른 길로 가셨을 수도 있으니까.
.. 그래 가자.
Comment
자전거길 위에는 ‘굳이’를 달고 사는 이들이 가득했다. 굳이 국토종주라니. 굳이 그걸 하려 한다니.
2024년에 낭만이라니.
낙동강하굿둑에는 결국 모든 인연이 모이게 되어 있다. 안경 쓴 사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상 깊었던 댓글: ‘무심사 박진고개 영아지고개 lets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