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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성 Nov 17. 2021

김장 전투

북한 김치 이야기

 북한엔 전투가 참 많기도 하다. 씨 뿌리기 전투, 모내기 전투, 김매기 전투, 가을걷이 전투에 이르기까지 곡식을 심고 거두어들이는 과정이 모두 전투다. 게다가 시기별로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70일 전투, 100일 전투, 150일 전투, 200일 전투 갖다 붙이면 모두 전투이다. 그중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전투는 김장 전투이다.  

 

 북한에 김치는 반년 식량이라는 속담이 있다. 김장은 농사만큼이나 중요하게 간주되는 가족의 대사요,  온 마을의 관심이 쏟아지는 연중의 의례이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식솔 한 명에 김치 한 독은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여섯 식구였던 우리 집은 커다란 오지 독 3개와 작은 거 2개 해서 총 5독에 김장을 했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독을 모두 씻어서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유황에 불을 붙여 독 안을 소독한다. 유황냄새가 정말 지독해서 그 독에 김치를 담그면 먹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김치를 먹을 쯤에는 감감 잊어버렸다. 1년 내내 김장준비를 시는 엄마가을 잠자리가 하늘에서 점차 사라지는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고춧가루며 마늘, 생강 같은 재료들을 마련해놓으셨다. 김치에 넣을 명태나 가자미 같은 어물들도 준비해 두셨다.


김장용 배추와 무는 보통 부모님 직장에서 배급받았는데 배추와 무가 그대로 있는 밭이 통째로 주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밭을 이웃한 경우가 많아서 수확하고 나르는 것까지 서로가 함께 돕는다. 10월 중순쯤 온 동네는 김장배추를 날라 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기 종아리보다 큰 무를 하나씩 어깨에 둘러메고는 수레 꽁무니를 따라 달린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보통 11월 중순 경이면 김치를 담그는데, 날씨가 더 추운 북쪽 지방에 사시던 할아버님 댁에서는 그때쯤 벌써 김칫독 하나는 비어있었다. 동해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 지방에서는 김장 하루 전에 잘 다듬은 배추를 그물로 된 망태기에 넣고 바다에 10시간 정도 담가 둔다.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바위가 둥그렇게 둘러선 곳에 담근다. 그러면 배추가 아주 완벽하게 절여진다. 내 고향 앞바다는 워낙 맑고 깨끗해서 두부를 만들 때도 바닷물을 길어다가 두부를 굳히는 첨가제로 쓴다. 바다에서 배추를 절이면 김치 맛이 좋아지고 소금도 절약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바람 사나운 북쪽의 초겨울에 야외에서 물에 손을 적셔가며 커다란 김치 망태기를 건져내야 한다는 것이다. 쌩쌩 부는 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김치를 담그는 일은 고역이다. 아마도 김치 담그는 과정을 김장 전투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추 망태기는 너무 무거워서 보통 장정 서넛이 함께 들어야만 했다. 한 번은 바다에 배추를 담가 놓았는데 저녁에 건질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가 오지 않으셨다. 마침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도와준다고 온 내 친구들도 기승을 부리는 파도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차에 아빠친구들과 함께 막 도착하셨다. 어둠 속에서 배추 망태기를 건져 올리려는 술 취한 장정 셋이 성난 파도와 대치한 형국이었다. 아빠 친구 한 명이 먼저 파도를 뒤집어쓰고, 다음에는 아빠가 쓰고, 나중에는 셋이 모두 물참봉이 되어 한참이나 역사를 한 후에야 배추 망태기를 모두 건져낼 수 있었다. 우리는 절여진 배추 모양이 된 아빠 친구들뒤로한 채 배추 실은 수레를 끌고 신나게 앞으로 달렸다.

 

 김장하는 날은 일종의 마을 잔치였다. 동네 아낙들 중 손맛 좋은 몇을 청 해다가 양념을 버무리게 하고 아이들은 엄마들이 담아주는 김치를 연방 김칫독에 가져가면 거기서 아주머니 한분이 또 꾹꾹 눌러서 독에 쟁여 넣는다. 그렇게 김치를 함께 하노라면 동네에 누구네 집 김치가 제일 빨갛고(고춧가루), 누구네 김치에 명태를 넣었으며, 어느 집 김치가 가장 맛있다는 소문이 나는 건 당연지사다. 어느 아줌마가 배추속대에 양념을 쓱쓱 발라 건네주기라도 하면 입으로 널름 받아먹으며 한없이 흐뭇하던 마음이 여직 내 마음 구석에 남아있다. 저녁에 김장이 마무리되면 형편이 되는 집은 떡을 만들고 그렇지 않은 집은 국수라도 눌러 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 아낙들이 돌아갈 때는 그릇마다 양념이며 햇김치를 그득그득 담아 가져다 집 식구들에게도 맛을 보인다. 나는 이따금 어머니가 가져오는 이웃들의 김치가 그리도 맛있었다. 이따금 어머니는 그릇에 김치를 한 가득 담아서 누구누구네 집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러면  집 아이가 나중에 내가 가져간 그릇에 자기네 김치를 담아 가져다준다.  

 

 겨울이 깊어지고 본격적으로 김치 맛이 들 때쯤이면 마실 하는 아낙들의 실없는 농담으로는 긴 겨울밤이 결코 쉽게 축나지 않는다. 이때가 바로 마을 아줌마들의 동네 김치 맛 평가가 시작되고 랭킹이 정해지는 시즌이다. 마실 방 김치 추렴은 맛 평가가 진행되는 엄정한 심사석이다. 김칫독에서 막 꺼내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김치를 쭉쭉 찢어서 사각사각 먹어대는 맛이란. 김치 맛이 좋다고 소문나면 별로 좋은 일이 있을 리 만무지만 모두들 은근히 자기네 김치 맛이 으뜸으로 평가되길 바란다. 만약 누구네 김치가 제일이다,라고 평판이 받는 날에는 그 집 김치는 벼락 맞은 소고기 신세다. 귀한 손님이 왔는데 김치 한 그릇 좀 주오, 아들 녀석이 감기 들어서 조금만 줍소, 할 때마다 퍼주다 보면 꼼짝없이 봄이 오기 전에 김칫독이 바닥나기 마련이다.  

 

 이따금 밥상머리에서 김치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명태를 날쌔게 낚아가는 순간이면, 나쁜 버릇을 탓하는 할머니의 스매싱이 등 쪽에서 번쩍였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기숙사에 계셨는데, 김치를 가져다 드릴 때마다 칭찬해주셨다. 그 칭찬이 듣고 싶어 한번은 엄마 몰래 김치를 가져다 드리다 들켰던 적도 있다. 김칫독을 채울 때마다 아이들의 몸은 자랐고, 그 독이 비는 동안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김치 그릇 들고 다니는 일이 창피하다며 동생들에게 떠넘겼다. 그렇게 우리는 커갔던 것이다.

  

 우리 집은 때로 5월 초까지도 김치가 남아 있곤 했는데, 이변이 없으면 김칫독 하나는 땅속에 깊숙이 묻어두고 3월 말쯤에야 개봉했다. 5월은 북한 쪽에서 새끼 오징어가 막 잡히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오징어잡이 나가는 배꾼들에게 김치를 양동이에 하나 가득 담아 보내면 들어올 때 거기에 오징어를 하나 가득 담아 주었다. 한겨울 김치의 쩡한 맛도 좋지만, 초여름 김칫국물에 말아 먹는 옥수수 냉면 맛은 정말 일품이다. 비로소 우리 집 마지막 김칫독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머니의 김장 전투는 다시 시작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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