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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n 25. 2023

53. 한적한 전시실인 줄 알았는데.

안토니오 카노바의 비너스와 님프가 있는 곳


늘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대형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는 눈은 호강하면서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전시실이 있다.


다른 전시실처럼 복잡하지 않아 장시간의 관람에 지친 다리의 피로도 풀 겸 잠시 숨 돌리며 아름다운 걸작을 여유 있게 감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방이다.


전시실 515호.


메트로폴리탄에 입장하여 중앙계단을 오르지 말고 1층 '로버트 리만 컬렉션(Robert Lehman Collcetion)'을 향해 가다가 오른편 영국관으로 방향을 틀면 해 질 녘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비스듬히 누운 아름다운 물의 님프 나이아드(Naiad)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515 전시실

님프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비너스'까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니 이런 호사스러운 쉬어감이 또 있을까 싶어 박물관 투어가 지칠 때면 찾아오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비너스 이탈리카', 안토니오 카노바, 1823, 메트로폴리탄
메트로폴리탄 전시실 515(좌), 랜스다운 하우스, 위키미디어(우)

메트로폴리탄 515 전시실은 런던의 랜스다운 하우스(Lansdowne House London)의 다이닝 룸을 재현해 놓은 방이다.

실제 사진과 비교해도 로마 조각상을 대신한 비너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원래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랜스다운 하우스는 1768년 완공된 건물로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의 사회 및 정치계인사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곳이다. 중요한 장소였다는 이야기.


수상 관저로도 사용됐던 이 건물의 일부가 1930년경 허물어질 운명에 놓이자 그중 다이닝 룸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1954년 지금의 전시실로 옮겨 재현해 놓은 방이다.


방의 가운데 놓인 벤치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면 네오클래식 양식의 스투코(Stucco) 양식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천장이 이 방의 격을 높이는데 일조를 한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면 벽면의 니치(niche:장식을 위해 벽에 만든 박스)를 장식하고 있는 고대 석고상들도 예사롭지 않다.


스투코 방식은 건물의 천장이나 벽면, 기둥등의 마무리 방법으로 부조 등을 만들어 화려한 마무리를 하는 기법으로 고대에 사용되다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재현되기 시작한 건축기법이다. 18세기 영국의 고급 주택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시실 양벽의 니치에 전시된 석고상들


니치를 장식하고 있는 석고상들은 메트로폴리탄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인데 원래 랜스다운 하우스 니치에 전시되어 있던 원본 고대 조각상들은 경매로 새 주인을 찾아갔다는 설명이다.


고대 조각상도 좋긴 한데 시선은 자꾸 전시실 양 끝에 전시된 하얀 대리석의 두 여인에게로 간다.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22)'의 '비너스 이탈리카(Venus Italica)'와 '리클라이닝 나이아드(Reclining Naiad)' 조각상이다.


'안토니오 카노바가 누구지?' 한다면 이 작품을 보자.

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1787,카노바, 루브르

루브르의 조각관의 하이라이트 'Psyche Revived by Cupid's Kiss(1787)'.

루브르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인증 사진을 찍는 유명한 조각상이다.

카노바의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비엔나에 가면 꼭 들리는 뮤지엄,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의 입구에는 'Theseus defeats the Centaur(1805-1819)' 거대 조각상이 모든 방문객을 맞이한다.

Theseus defeats the Centaur, 1805-1819,카노바, 빈 미술사 박물관

카노바의 작품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1층 회랑에 당당하게 서 있는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또한 그의 작품이다.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1816, 카노바, 메트로폴리탄



미켈란젤로 이후 이탈리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인정받는 안토니오 카노바.


그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조각가다.

신고전주의는 귀족이나 부유층의 과도한 화려함 추구와 부패성을 타파하고 고전인 그리스 문화로의 회귀를 지향하여 순수한 아름다움을 예술로 재건하는 것이 모토였다.

고전 그리스에서는 이상적인 미나 절대적 아름다움은 오직 신만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긴 탓에 카노바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를 주제로 만들어졌다.


전시실 515호를 장식하고 있는 '비너스 이탈리카'는 만들어진 동기가 흥미롭다.


나폴레옹의 기세가 전 유럽을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피렌체 우피치에 있던 기원전 1세기 작품인 'Venus de' Medici'를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가자 애국적 차원에서 그것을 대체할 작품을 만들라는 의뢰를 받고 카노바가 1819년에 만든 것이다.  

Venus de' Medici,BC 1,우피치(좌)/Venus Italica, 카노바, 1819,피티 궁(중앙)/Venus Italica,카노바 스튜디오,1823,메트로폴리탄(우)

카노바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강조되면서 실제 여성과 같은 키로 만들어져 오히려 원작보다 더 잘 만들어졌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Venus de' Medici'가 우피치로 돌아오자 카노바의 '비너스 이탈리카'는 우피치 옆의 피티 궁(Palazzo Pitti)으로 옮겨 전시되었다.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되어 있는 '비너스 이탈리카'는 카노바 스튜디오가 그의 사후 1823에 완성한 작품으로 2001년 박물관에 기증된 작품이다.


카노바의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조각상도 '비너스 이탈리카'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메트로폴리탄의 '페르세우스'상은 카노바의 동명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1796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바티칸에 있던 '아폴로 벨베데레(Apollo Belvedere)'를 파리로 가져가자 '아폴로 벨베데레'와 견줄 만큼 평이 좋은 카노바의 '페르세우스' 조각상을 교황 비오 7세가 구입하여 바티칸의 '아폴로' 자리에 전시해 놓았었다.


교황 비오 7세는 나폴레옹과 인연이 깊다.

자크 루이 다비드(https://brunch.co.kr/@cielbleu/23 참조)의 대작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황제 뒤에서 취하고 있는 애매모호한 자세로 여러 가지 해석을 끌어내는 인물이 바로 비오 7세다. 

나폴레옹 뒤에 앉아 있는 비오 7세

1815년 '아폴로' 조각상이 바티칸으로 돌아온 후에도 카노바의 '페르세우스' 조각상은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메트로폴리탄의 '페르세우스'는 그 후 폴란드의 예술 애호가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복제품이다. 


창가에 나른한 포즈로 누워 있는 'Reclining Naiad(1819-1824)'는 카노바가 앞서 만든 'Reclining Venus with Cupid(1814:현재 버킹엄 궁에 소장되어 있다.)'와 로마의 보르게제(Borghese) 뮤지엄에 있는 '비너스 빅트릭스(Venus Victrix:1805-1808)'를 참고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은 랜스다운 가족이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을 1970년에 뮤지엄이 소장하게 된 작품이다.

Reclining Naiad, 1819, 카노바,메트로폴리탄
1817년 발간된 책에 실린 'Reclining Venus with Cupid' 뒷모습, 에칭
Venus Victrix, 1805, 카노바, 보르게제 뮤지엄


보르게제 뮤지엄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비너스 빅트릭스'의 모델은 프랑스의 공주다.

바로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 보나파르트(1780-1825)다.

나폴레옹은 카노바의 단골 고객이었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빼앗긴 이탈리아 예술품들을 반환받는데 카노바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카노바는 '비너스 빅트릭스'를 제작할 때 사냥의 신 다이애나를 구상했으나 보르게제 가문의 여주인 폴린은 나신의 비너스를 고집했다고 한다. 

결국 반나의 비너스가 만들어졌고.


마치 사람이 침대에 누워있는 듯한 질감 표현에 정말 저것이 대리석인가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났던 작품이다.

조세핀도 이 작품을 보고 비슷한 표현을 했다고 하니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흥에 큰 차이는 없지 싶다. 


폴린은 보르게제 집안의 까밀로 보르게제(Camillo Borghese, 6th Prince of Sulmona:1775-1832)와 1803년 결혼했는데 이 혼인으로 나폴레옹은 보르게제 집안이 소장하고 있던 많은 예술 작품을 엄청 저렴한(?) 가격에 프랑스로 가져올 수 있었다. 

루브르의 걸작 중 걸작인 'Sleeping Hermaphrodite'도 1807년 보르게제 가문에서 구입(?)한 작품이다.

기원전 150-140, 로마제국, 1618년 로마에서 발굴됨

시에나 출신의 보르게제 가문은 233대 교황 바오로 5세(재위:1605-1621)를 비롯 2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로마의 귀족 집안으로 많은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 보르게제 박물관은 현재도 로마의 숨은 보석 같은 박물관으로 예약 없인 입장이 힘든 곳이다.


보르게제 뮤지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The Palazzo di Brera)에는 정문을 지키고 있는 'Napoleon as Mars the Peacemaker(1807)'의 청동 상이 있는가 하면, 

브레라 미술관 나폴레옹 동상(좌)/잠자는 엔디미온,1819,챗스월스 하우스(우)


영국 체스터필드(Chesterfield)에 있는 챗스월스 하우스(Chatsworth House)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셀레네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목동 '잠자는 엔디미온(Sleeping Endymion)'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유수 박물관들이 앞 다투어 소장하고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

그의 명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거장의 작품을 편하게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가끔은 오롯이 혼자서 감상할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세계 3대 박물관에 이름을 올리는 메트로폴리탄에서 말이다. 

'뮤지엄 하이라이트'에도 올라와 있는 진정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전시실 515호다.


나이아드 님프와 함께 전시실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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