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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l 16. 2023

54. 비 오는 날의 멋진 전시회

수화 김환기 회고전에 붙여

날씨가 꾸물꾸물 하여 걱정이 되긴 했지만 우린 그런 날은 또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지 않겠냐며 친구와 오랜만의 반가운 동행길에 나섰다.

호암 미술관 정원 희원

가는 곳은 호암 미술관 김환기 회고전이다.

날씨가 문제 될 수 없는 전시회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 대한 반가움과 큰 기대를 하고 가는 김환기 회고전이다 보니 소풍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다.

호암 미술관 김환기 회고전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

이름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오마쥬를 받는 그야말로 한국 근대 미술, 추상미술의 아버지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내내 나의 오랜 친구는 김환기 일대기를 조분조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새삼 화백의 일대기를 되짚어 보게 하여 듣는 마음이 좋다.


1913년 전라도 신안 출신의 김환기 화백은 1930년대 동경 유학으로 추상화의 세계를 접하게 되고 시인 이상과 사별한 김향안(1916~2004) 여사와 1944년 결혼하고 1956년부터 3년여를 파리에서 유학한 후 1960년대 중반(1963~1974) 뉴욕으로 옮겨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환기 화백이 '백자대호'에 '달 항아리'라는 애칭을 붙여준 장본인이라는 거 알아?'   

'맞다. 맞다.'를 연발하며 길지 않은 드라이브 끝에 도착한 전시장.


김환기 회고전 전시장

이미 적지 않은 관람객들이 거장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두 개 층의 큰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화풍의 변화를 연대별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이 배치되어 편안히 관람할 수 있었다.


'달, 항아리'란 부제로 시작하는 2층 전시실 1관에는 1930년대 작품부터  동경 귀국 후 작품, 1950년대 파리 생활 작품,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첫 작품은 자연을 단순화 한 1948년작 '달과 나무'로 시작한다. 

동경에서 귀국 후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중시하던 화가가 달과 나무를 주제로 한국적 추상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란 설명이다. 


달과 나무, 1948

김환기 화백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후의 작품으로 한국 추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1938년 작 '론도'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국가등록문화재 제535로 등록된 작품이다.

론도, 1938

하늘, 달, 백자등 한국의 전통 요소들을 주로 다루었던 그의 작품 세계가 점점 추상화로 변모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반추상화였던 그의 작품이 점점 추상화로 바뀌어 전면점화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연대별로 볼 수 있어 감상하는 눈이 즐겁다.


1940년 자신이 태어난 전라남도 기좌도를 그린 섬이야기는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는 설명이다.


섬 이야기, 1940

1953년 같은 해에 그린 두 개의 정물화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같이 전시한 것도 보기 좋았다.

왼편의 정물화에서는 세잔느 풍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물, 1953

1950년대에는 정물화라기보다는 추상화에 가까운 구도가 특징인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노란 과일이 있는 정물, 1954

개인적으론 가장 눈에 들어온 '달빛 교향곡'이다. 

달 항아리와 달의 묘사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보는 눈이 편안하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니 마음껏 감상을 해본다.

달빛 교향곡, 1954

국립 현대 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https://brunch.co.kr/@cielbleu/258#comment 참조)에서 보았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도 전시실 전면에 전시되어 있어 다시 보는 마음이 좋다. 

여인들과 항아리, 1960


피카소가 활동하던 1956년 파리에 도착하여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이던 그가 1957년 완성한 두 작품 영원의 노래 I, II도 전시되어 있다. 

파리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제일 앞에 소개되었다는 두 작품에서도 화풍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영원의 노래 I이 엄정한 격자 구조라면 II는 열린 구성으로 국제무대 분위기를 한국적 요소에 접목시킨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영원의 노래I(좌), II(우), 1957

1관의 마지막 작품은 1961년작 여름 달밤이다.

그의 고향 신안 기좌도 앞바다를 그린 추상화인데 그림 속 문양이 백제산수문전문양과 유사하여 한국 전통을 살리고자 한 화백의 의도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작이다.

여름 달밤, 1961



'거대한 작은 점'이라 부제를 붙인 1층 전시실 2관에는 60년대 뉴욕 거주 작품으로 추상화가 전면점화로 완성되어 가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북서풍, 1965.8(좌), 남동풍, 1965.8(중앙), 북동풍, 1965.7(우)

그의 화풍은 1965년부터 자연모티브를 대신하여 선, 면, 색면 등 추상미술 조류를 참조하게 되고  1969년경에 이르러서는 전면점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전면점화의 첫 작품은 감동이었다.

그가 한국에 선보인 최초의 전면점화로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에 빛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시실 한 칸을 모두 할애하여 전시되어 있다.

작품의 위상도 있지만 그림의 모티브가 된 김광섭 시인의 시가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어 시를 음미하며 작품 감상을 하기에는 더 없는 전시실이다. 

한참을 그림 앞에 머물다 발길을 옮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Where, in What Form, Shall we meet again?),1970.4.16

다음 작품은 2019년 한국화가 최고 경매가인 132억을 기록한 ‘우주’(Universe 5-IV-71 #200)다.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보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작가를 생각해 본다. 

키가 컸던 김환기 화백은 점화작업을 하느라 목디스크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켈란젤로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릴 때 물감이 얼굴로 떨어져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고는 절대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대가들의 이런 이야기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다.


‘우주’(Universe 5-IV-71 #200),1971

일반적인 벽면 전시가 아닌 중간에 벽면을 커브로 만들어 전시한 것이 특이했다.

김환기 화백은 작품 구상을 위해 산책을 주로 하곤 했는데 이 점을 고려하여 만든 전시실이란 설명이 따라온다.


전면점화 전시실

작품들 옆에는 작가가 겪은 힘든 시간과 고뇌를 같이 음미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어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감상해 볼 수 있다.

산울림 19-II-73 #307

병세가 악화되면서 푸른색 점화를 주로 그리던 그의 점화 색이 점차 어두운 색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대담한 구성보다는 고요하고 정적인 점화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죽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17-VI-74 #337


전시의 뒤로 갈수록 친구와 나는 말을 잊은 채 작가의 고뇌를 동감이라도 하듯 각자의 감상 모드에 빠져 출구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생전 작업 사진 앞에 와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역시~'하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캔버스 전면에 점을 찍고 점과 점 사이를 다시 칠해 나가면서 작품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인 그의 열정과 고뇌 앞에 경매가가 얼마니 하는 말은 쉽게 할 말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나의 친구는 전시회 총평을 한마디로 말한다.

'한 번으론 부족해!' 


비 오는 날의 멋진 전시회였다.

희원의 연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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