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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27. 2024

64. 가끔 이런 그림이 좋다.

19세기 최고의 Travelogue : 데이비드 로버츠


우리는 먼 길 떠나 도착한 여행지에서 무엇인가 기념이 될 만한 것을 가져오고 싶어 한다.

그중 가장 부담 없는 기념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사진이나 엽서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지금처럼 누구나 멋진 샷을 찍을 수 있는 고성능 핸드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진 기술이 발달된 것도 아닌 시절이라면 친지들에게 어떻게 자신이 본 기가 막힌 풍광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리는 거다.


누군가 내가 본 풍광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다면 이만한 기념품이 또 있을 가 싶었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의 인증샷의 기원인 셈이다.


17세기 중반부터 붐이 일기 시작하여 18세기 영국의 귀족 자제들 사이에 인기 있었던 '그랜드 투어'가 있다.


귀족 집안 자녀들이 역사와 문화 탐방을 위해 사회적으로 신망 있는 인물을 인솔자로 초빙하여 짧지 않은 기간(보통 2-3년)을 유럽 본토(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둘러보는 지금의 럭셔리 해외 유학쯤에 해당하는 투어다.


투어의 종착역에 해당하는 베니스에서 참가자들이 고국으로 가져가고 싶어 한 인기 아이템 중 하나는 카날레토(1697-1768) 같은 베두타 화가들이 그린 이국미 가득한 현지 풍경화였다.


인간의 눈과 손으로 어떻게 이토록 정확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감탄에 마지않는 작품들이다.

산마르코광장, 1720년대, 카날레토, 메트로폴리탄, 뉴욕

원래 베두타(Veduta) 기법은 정밀화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16세기경 시작된 기법인데 카날레토는 시대적 니즈와 맞아 그랜드 투어의 큰 수혜자가 된 셈이다.


그랜드 투어를 다년온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증거로 은근히 내보이며 자신의 여정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하니 가히 18세기판 인증샷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카날레토의 그림은 사진보다 더 실물 같은 섬세함에 당시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성원에 힘입어 거주지를 이탈리아에서 아예 런던으로 옮기기까지 했지만 과유불급이랄까.

그는 막상 영국에서는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의 그림이 인기 있었던 것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일종의 대리 욕구로 먼 타국의 풍경을 원했던 거였지 같은 하늘아래,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영국의 풍경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작품은 어떤가?


그림 같기도 하고 스케치 같기도 한 그림은 마치 무슨 고서에서 튀어나온듯한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이집트를 방문한 스코틀랜드 화가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1796-1864)의 그림이다.


기자의 스핑크스, 1838, 데이비드 로버츠(위키미디어)

모래 속에서 빠꼼이 얼굴부위만 내놓고 있는 스핑크스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현재 스핑크스 모습

데이비드 로버츠는 에든버러 지역 출신 화가로 원래 무대 배경의 풍경화를 주로 그리던 풍경 화가였다.

Rouen Cathedral, 1824, David Roberts, Smithonian, Washington DC

그런 그가 이집트와 중동지역으로의 여행을 추진한 데는 다 계획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이집트를 비롯 중동지역 나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지만 막상 이 지역에 대한 정확한 자료들은 기대만큼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데이비드 로버츠는 1838년부터 2년여 동안 직접 현지를 여행하며 그곳의 실상을 그림에 담고 이 작품들을 토대로 삽화집을 발간할 생각이었다.


이 계획은 당시 최고의 석판화가(lithographer)였던 벨기에의 루이스 하게(Louis Haghe:1806-1885)와의 협업으로 모두 6부작인 삽화집을 탄생시켰다.

총 6부작 중 Vol 5.의 표지(위키미디어)

그의 탄탄한 실력과 아이디어는 적중하여 수채화 250편이 게재된 삽화집은 '19세기 최고의 여행기(travelogue)'란 찬사를 받으며 화가 자신의 최대의 걸작으로 남았다.


아직 사진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타이밍 상으로도 매우 적절한 시기에 발간된 그의 작품집은 성공가도를 달렸고 그의 1호 고객은 당시 영국 여왕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Abu-Simbel , 1838, 데이비드 로버츠(위키미디어)
Temple of Edfu,1838, David Roberts(위키미디어)
Temple of Kom Ombo, 1838, David Roberts(위키미디어)

그의 그림은 예술적 그림보다는 사실화에 가까운 삽화로 역사의 자료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19세기 이집트의 유물들이 놓여 있던 실상을 접할 수 있어 가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한다.


가장 좋은 예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런던의 템즈 강변에 서 있는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두 나라로 옮겨지기 전 이집트 현지에서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생생한 상황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그림이 그의 삽화집에 남아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두 오벨리스크, 1838, David Roberts(위키미디어)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를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지은 신전 앞에 서 있던 두 오벨리스크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 불리는데 땅 속에 묻혀 있는 오벨리스크는 1878년 런던의 템스 강변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1881년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경쟁하듯 세워졌다.

(https://brunch.co.kr/@cielbleu/269 참조)


당시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의 총독이었던 무함마드 알리는 외교의 한 수단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엄청난 유산을 국력을 키우는데 아낌없이 이용했던 것이다.

센트럴파크(좌)/탬즈 강변(우)

이런 류의 그림들은 역사적 왜곡을 입증하는 자료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핑크스의 깨진 코에 대한 분분한 의견의 종지부를 찍은 그림이 대표적 예이다.


18세기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 길(1798-1801)에 스핑크스 코를 폭파시켜 현재 스핑크스는 깨진 코를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보다 50여 년 앞서 그려진 그려진 그림에 이미 스핑크스의 코는 깨져 있어 나폴레옹은 억울함을 면할 수 있었다.

 '스핑크스', 1737년, 노든, 위키미디어

1737년 이집트를 여행한 덴마크의 해군 장교 노든(Frederic Louis Norden:1708-1742)이 남긴 스케치에 다행스럽게(?) 이미 코가 손상된 스핑크스의 모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핑크스의 없어진 코에 대해 선 이슬람의 우상파괴 정책으로 14세기경 파손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그런데 덴마크의 노든 보다도 50여 년 먼저 스핑크스를 그림으로 남긴 화가도 있다.

이번엔 네덜란드 화가다.

1698, 코르넬리스 드 브루인(위키미디어)

네덜란드의 화가 겸 여행가인 코르넬리스 드 브루인(Cornelis de Bruijn:1652-1727)이 1698년 그린 그의 작품 속 스핑크스의 코는 온전한 모습이다.


5,000여 년의 세월을 풍파에 시달리고 모래 속에 파묻혔다가 세상으로 나오길 반복하다 보니 스핑크스의 손상된 코에 대해선 여러 설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것이 없고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깨진 것이란 것만이 확인된 상태다.


코르넬리스나 노든 처럼 데이비드 로버츠보다 앞서 이런 류의 그림을 남긴 화가들은 여럿 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비롯 폐허가 된 유적지지만 본래의 건축미를 그대로 살려 그려냈고 현지인들의 당시 일상을 엿볼 수 있도록 그림에 같이 담은 점 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와 누비아 여행 후 영국 로열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렇듯 누군가 남긴 한 장의 그림이나 스케치가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데이비드 로버츠의 그림을 보면 많은 유적지들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거나 물에 잠겨 있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래에 묻히고 물에 잠긴 에드푸(edfu) 신전(좌)과 필레(Philae)신전(우)/,1838, 데이비드 로버츠(위키미디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당시 강대국들은 이런 문화적 유산을 자신들이 보존하지 않았다면 현재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센트럴파크 한편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그 모습이 참 생뚱맞다고 느낀 것은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태양신 숭배와 파라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 한 복판에 서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근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안에는 아스완 댐 건설로 아부심벨 신전과 같이 수장될 뻔한 이집트의 덴두르 신전(The Temple of Dendur)이 옮겨져 전시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덴두르 신전,1838, 데이비드 로버츠(좌)/ 메트로폴리탄 전시실의 덴두르 신전(우)

 

이집트는 아직도 많은 자국 유산의 해외 유출의 반환을 요구하는 재판을 진행하고 있지만 강대국들은 들어줄 의사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수 천년의 세월 속에 손상되고 파괴되어 볼 품은 없어졌더라도 있어야 할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이런 유물들을 보러 수많은 관람객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이유다.


파괴되고 손상되었지만 수 천년의 역사 위에 꿋꿋이 서 있는 멤논 거상

                  

 *아부심벨, 에드푸 신전, 콤옴보 신전의 현재 모습들. 데이비드 로버츠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아부심벨
에드푸 신전
콤옴보 신전



 *현재 출간되고 있는 데이비드 로버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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