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요가를 사랑하게 되었나
20대 중반쯤 됐을 때 집이랑 꽤 멀리 떨어진 요가원에 등록한 것이 처음이었다.
두 번째 수련을 한 날, 한밤 중에 소변을 보았는데 소변에서 빨간 피가 보였다. 오랜만에 운동을 너무 심하게 했나- 하고 무심히 넘겼었다. 그 후 한 달 남짓을 다녔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너무나도 마른 몸매에 '웃타나아사나'를 멋진 목소리로 구령하시던 선생님의 모습뿐이다.
다시 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던 때였다. 퇴근하고 나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 뭔가가 필요했고, 마침 집 근처에 꽤 인기 있는 핫 요가원이 있었다. 그때는 선생님이 보여주는 동작을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 하며 몸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느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야근, 회식, 그리고 지독한 연애 같은 것에 시간을 쓰느라 나는 또 한달 만에 요가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어 나는 지독한 연애의 대상이었던 그와 결혼했다.
결혼 1년 후 임신을 했고 임신 내내 나는 '환도가 서는 통증'에 시달렸다. 2021년 3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럼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산후우울증도 매우 심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아들은 태어난 직후 자가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니큐에서 5일을 지내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고, 심실중격결손이라는 선천적 심장기형 진단을 받았다. 나는 2주로 예정했던 산후조리를 1주만에 끝내고 나와 아들을 또다른 대학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켰다. 아들은 그 당시 상세불명의 심한 황달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 번째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아들은 다시 3주를 지냈다. 의사는 이런 우리 아들의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망할 놈의 바이러스 창궐로 당시 아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면회를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다. 담당 간호사가 일주일에 두 번쯤 아들 사진을 보내줬다. 난 한달 간 매일 숨죽여 울거나 엉엉 울거나 미친듯이 울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이런 글도 썼다.
・ 2021. 3. 29. 22:01 ・ 비공개
또또야,
엄마는 아직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해주지 못했어
진작 네 얼굴을 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왜 그러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안타깝다
커가는 너의 하루하루 그 예쁜 모습이 아까워
너무 보고싶어
너무 너무 보고싶어
사랑해
나는 유축한 모유를 얼려 병원으로 날랐다. 이사갈 집도 보러 다녔고, 그토록 무서워 미루고 미루던 운전면허 시험도 준비했다. 그렇게 여기 저기 쏘다니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꼬리뼈 왼쪽에 전기 충격이 오듯 찌릿하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몸은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눈물은 말라갔다.
참 시간은 잘 갔다. 그렇게 아들은 황달 수치가 내려가 퇴원을 했다.
그렇게 6월이 됐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바로 전날이었고, 아들이 100일을 맞이하기 딱 3일 전인가 그랬을 거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들 수가 없었다. 동이 틀 시각이 다가오고 심장은 방망이질을 쳤다.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멀뚱히 뜨고 있던 그때.
그때 요가가 생각났다.
혼자서 요가를 할 자신은 없었기에 유튜브에서 아무 요가 영상이나 틀고 무작정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단 35분 동안의 요가, 7년 만에, 그리고 출산 3개월 만에 하는 요가.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사바아사나를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직 유전자검사 결과를 듣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이미 최악의 결과를 통보받은 사람처럼 펑펑 울었다.
그러고 나니 마침내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요가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되돌아보니 참 아련하고 아쉽다. 좀 더 어리고 더 건강할 때 사랑에 빠져버려서 쭉 수련을 해왔더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나란 인간은 사실 무언가를 사랑하기까지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다. 너무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이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내가 요가 수련에 빠졌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긴 하다.
어쨌든, 어차피 좋아졌으니 이젠 어쩔 수 없다.
싫어질 때까지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