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저널리스트 리즈.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녀는 남편과 함께 모임에 참석했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원했던 삶이 맞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공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해보지만 그것에 대한 답은 그녀가 잘 알고 있다. 발리의 유명한 주술사의 말처럼 그들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고, 이후 그녀는 데이비드라는 연극인을 만난다. 하지만 그 사랑도 오래가진 못한다. 그녀 자신을 찾기보다는 행복을 찾고자 그에게 집착하고, 고통인 것을 알면서도 그와의 생활에 안주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 관계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면서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만날 싸우고 잠자리도 안 하면서 헤어지기는 싫어하고
그렇게 서로 불행하게 인생을 살면서 같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 데이비드 대사
남편과의 이혼, 애인과의 이별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것이 무의미하며, 언제부터인가 어떠한 욕구도 갖지 못하는 자신을 찾고자 오랫동안 상자 안에만 넣어두었던 여행을 계획한다. 돌아올 집도 남겨두지 않고 오롯이 그녀 자신을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머무르는 일보다 더 힘든 게 떠나는 일이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거야.
나도 전엔 음식에든 삶에든 의욕이 있었어.
근데 이젠 아냐
뭔가 색다른 곳에 가고 싶어
- 리즈 대사
그녀가 음식이든 삶에든 의욕을 갖고 싶다는 말에 나 또한 실직 이후 아니 남편과의 결별 이후 나에게 의욕적인 무엇이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딱 그만큼. 그것을 삶에 대한 의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에 대한 열정, 관계에 대한 기쁨,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탄들이 내 일상에서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과거에 갇혀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내가 지금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그렇게 싫어했던 노인들의 귀찮으짐과 두려움, 그리고 인생에 대한 무기력함을 매일같이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노력하지 말고 그냥 포기해
다 포기하고 그냥 앉아있어 보라고
그럼 답이 나올 거야
왜 과거에 매달려?
- 리처드 아저씨 대사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과거에 있다.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여전히 어두운 과거를 핑계 삼아 나오려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려운가 보다.
그동안의 많은 경험을 통해 성숙한 나를 만들어야 함에도
그 경험들이 주는 상처가 두렵고 아파서 그 어떠한 것도 해보려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하며 그렇게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우린 모든 것이 영원하길 바라.
변화가 두려워 고통에 안주하는 우리와는 달리
- 데이비드 대사
그녀는 음식에 대한 의욕을 찾고자 첫 번째 여행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했다.
이탈리아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매일 교회에 나가 동상 앞에서 기도하는 가난한 남자 이야기다.
'성자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어느 날 동상이 살아 움직이며 대답했다.
'아들아, 제발 부탁이니 우선 로또를 사거라'
이제야 그 농담이 이해가 간다.
- 리즈 대사
신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그녀의 첫 번째 로또에 대한 답을 주셨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리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큰 웃음이 아니어도 좋다.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에 대한 감사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술사가 말했던 간까지 웃을 수 있는 그 웃음을 웃어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관계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현대인들의 벗이라 불리는 외로움과 관계의 단절은 나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과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함일까? 명상 안에서 명상을 위한 방을 꾸미겠다는 잡념에 시달리는 리즈처럼) 무언가를 계속 사고 채우기 바쁜 나의 행동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관계에 대한 귀찮으짐. 설레지도 즐겁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나는 그냥 있다.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 했던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비정상적인 일상을 불편하지만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소화도 잘 시킨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춤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춤 핏을 좋게 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이어트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버리고 칼로리 낮은 맛없는 음식을 건강과 연관 지으며 홀로 먹게 되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의 몫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매일 먹을 거 참아가며
아침마다 전날 먹은 칼로리 일일이 계산하며
샤워할 때마다 툴툴거리는 거 이제 지쳤어
난 그냥 먹을 거야
나도 뚱뚱해지는 건 싫지만
먹을 땐 죄책감 없이 그냥 먹으려고
오늘은 일단 피자 다 먹고 축구경기나 보고
내일은 둘이 같이 나가서 청바지 큰 거 하나씩 사자.
- 리즈 대사
나폴리의 유명한 피자가게에 갔지만 살찌는 것이 염려되어 피자에 손도 대지 못하는 소피에게 뚱뚱하다고 해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도 아닌데 다이어트가 왜 필요하냐고 리즈는 묻는다. 소피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피자를 한입에 넣고 행복해한다.
그렇게 둘은 그곳에서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든다.
다이어트라는 것이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을 대신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욕구를 억제하며 다이어트를 하는 것일까?
함께 피자를 먹고 축구 경기를 즐기며, 다음날 청바지 큰 거 하나 웃으며 사러 갈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영원한 도시 어거스티움은
우리가 끝없는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 같았어.
어쩌면 내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엉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더 나쁜 건 세상 무언가에 집착하는 거라고.
파괴는 선물이야. 파괴가 있어야 변화가 있지.
우리 서로 같이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어.
- 리즈 대사
내 인생의 파괴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리즈도 그랬듯 파괴를 변화를 위한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념과 과거 속에서 살아야 한다.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마음의 근육이 어느 정도 생겼다며 오만과 자만으로 나를 무장했더란다.
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릴 정도로 나의 상처는 아팠고, 내 마음은 약해있었다.
남들은 이제 그만해도 괜찮지 않으냐며 얘기한다.
네가 원한대로 되었고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냐며 더한 고통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어린애마냥 아파하냐는 것이다. 서운하지만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더 좋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균형을 깨는 것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에요.
- 주술사 대사
사랑은 그 모습이 어떠한 형태를 지녔든 간에 삶의 균형을 깨트린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상대에게 내어주었음을 뜻하기에 그 안에서 나를 찾기란, 나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것이 맞다. 어렵게 찾은 균형을 더 이상 깨뜨리고 싶지 않은 리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너무도 좋고, 함께 있고 싶고, 매일 같이 사랑하고 싶지만 다시 올지 모를 관계의 어려움과 안주, 상처가 또다시 나를 고통으로 밀어 넣게 될까 봐 나라도 관계를 끊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빼고 사는 것이 가능한가?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에게 삶은 앞으로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얘기하고 싶다.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그 사랑을 위해 아트라버시아모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