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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광

가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합니다.

by 경계선

내가 쓴 이야기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좋은 걸까.

이런 나르시시즘이 또 있나.

이야기를 잘 썼다는 만족감이 드는 게 아니라,

만족감은 전혀 아닌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이야기의 고통이,

모두 결국 내 것인 것만 같아서,

결국 내 손끝에서 나온 이야기라서,

허구라도 애정의 손길을 뻗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제법 고통스러운데.

이야기는 원하는 만큼 풀어낸 좋은 글도 아님에도

그냥 그 감정과 내용 자체가 안타까워서

들숨 날숨에 이야기를 품었다 뱉었다 한다.

무엇도 되지 못하고 잉태하다 끝날 이야기일지라도

잉태는 생명의 출발점.

출발하지 못한 생명들이 산처럼 쌓여

더 이상 쌓을 데가 없을 때까지는,

나는 아마 이야기를 계속 쓰겠지.

왜 쓰냐고 물으면 아직도 답을 찾기 위해 쓴다고 밖에.

잉태만 하다가 끝날 이야기라도.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봄부터 품었던 이야기의 초고를 마무리한 게

하필 이 가을의 초입이라니.


아, 이제 가을인가.

이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이 조차도 나이브한데.


써야 할 글은 아직 시작도 못했고,

두 주인공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나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어서.

시간을 된통 허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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