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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박제된 문장처럼 건조했던 시간.

어이없던 팬데믹을 복기해 보면.

by 경계선

시그리드 누네즈, 민승남 역, 『그해 봄의 불확실성』 , 열린 책들, 2025


뒤돌아보았을 때 복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다란 인도 옆으로 속도를 내어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나를 위협하던 6년의 시간이 있었다. 뻘건 색연필로 채점을 해놓은 문제집이 가득 들어있던 책가방을 메고 밤길을 걸어 집에 오던 시간. 걸어 15분 정도가 지나면 푸른색 글씨의 영어로 패밀리마트가 쓰여 있었다. 몇 푼 용돈을 쪼개 거기서 슬러쉬 한 잔을 꽉꽉 담아 찬 공기에 더 찬 음료를 쭉쭉 빨아먹었던 그 시간. 왁자지껄한 아저씨들 사이로 아버지도 제법 취해 내 이름을 부르며 이제 학원에서 오는 길이냐고 집에서 나를 맞는다. 난감해하는 엄마의 표정과 쭈뼛하는 시간은 눈을 질끈 감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삭제되곤 했다. 복기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시간은 카세트의 고장으로 다시 봉인되지 않는 테이프처럼 먼지가 쌓였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그 외에도 조금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소설 제목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때문이었다.


지난겨울 웅크리며 읽었던 고작 한 권의 책은 신형철의『인생의 역사』였고. 신형철의 강의를 우연히 연말에 보다, 그가 추천했던 작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말에 힘입어 나는 또 책 한 권을 사들었다. 신뢰하는 사람의 '말'까지 모두 신뢰하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 있음에도. 때로 신뢰하는 사람의 '말'의 뿌리를 캐다보면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진면목이 보이기는 한다는 핑계로. 나는 재미없고 단순한 사람이므로 '봄'이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이 책을 봄의 시작인 3월에 읽었다.


누네즈는 이 소설을 그 시절에 썼을까. 나는 이 소설을 에세이처럼 읽었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 읽었다.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도 않지만, 사실로 믿고 싶어 질 만큼 아무런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라 모레알처럼 까칠했다.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 작품과 내 이야기가 동질 할 수 없다는 안도감. 이런 것들이 소설의 어느 부분에 빠져들었다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내 생각을 무너뜨렸다. 수전 손택의 에세이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처럼 다가왔다. 소설이지만 누군가의 일기장을 열어보는 느낌. 조금은 낯설지만 조금은 신기한 느낌. 자잘하고도 구체적인 일상의 이야기와, 있을 수 있지만 있지 않길 바라는 그런 일상 속 비극들이 삶을 거창하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 뒤돌아보았을 때 복기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팬데믹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의 삶이. 나의 삶이 뉴스에 박제된 건조한 몇 문장 같다. 여러 이유로 집을 이사하게 되었던 그 해 이른 봄. 포장 이사를 하고 난 다음날부터, 이른바 한국적 '봉쇄'가 시작되었다. 이삿짐센터의 소장님은 큰 짐을 옮기며 내게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내일부터 예약되어 있던 고객님들 모두 다 취소됐어요."

당장의 밥벌이도 걱정이 되는 눈치였지만, 이삿짐센터의 소장님은 이사 들어가는 집의 모든 문을 당연하겠지만, 스스로 다 열어젖히며 몰아쉬는 숨에 힘들 법도 한데 마스크를 벗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스크 안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대로 호흡곤란이 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KF지수가 최고인 마스크는 처음이었다.

내가 이사한 다음 날의 사람들은 모두 이사를 어떻게 했을까. 이사는 했을까.

이사를 한다는 것은, 들어갈 집의 금전적 정리를 했다는 뜻이고, 나가야 할 집에도 모든 계산을 마쳤다는 뜻일 텐데. 그건 어떻게 했을까. 이제야 생각한다. 누네즈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때의 아찔함을 주위에 물어 물어 복기한다. '봉쇄'로 나는 일터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전쟁 때도 문을 열었던 학교마저 닫혔고, 나는 아이패드를 처음으로 주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아이패드는 그때로부터 만 6년이 지났다. 뜨문뜨문 나는 그 시간을 복기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이 책은 불확실했던 어떤 시간을 생각하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의 내용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작가들과 작품들(조 브레이너드의 『나는 기억한다』, 존 디디언의 여러 문장과 인용들, 버지니아 울프의『세월』)에 관심을 가지고 끄덕하거나, 알지 못했던 어떤 문장과 책에는 밑줄과 띠지를 붙이는 정도. 봉쇄된 뉴욕과 의도하지 않은 사건들, 주인공의 소소한 일상과 어질러진 마음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책의 전반에 감도는 그 2020년의 봄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서두의 '불확실한 봄이었다'라는 문장이 탁월해 보이는 건, 작가의 센스 때문일까. 책을 읽을수록 나는 이 책의 제목에 탄복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던 나의 그 시간을 다시 건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뒤돌아보니 나는 복기하지 못할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소설 속 주인공보다도 나는 더 멍청하게 보냈던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다. 팬데믹이 확정된 어느 날, 나는 마스크를 사러 동네 약국도 모자라 더 먼 동네로 차를 몰고 나갔다. 개당 이삼천 원을 주고 구하면서도 어느 약국에서는 한 개만 더 팔아달라는 사정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날 오만 원어치의 마스크를 샀다. 몇 갠 지는 기억에도 없다. 적어도 몇십 개의 수준이었을 텐데 스무 개가 되었을까 싶다. 하루 종일 티브이 뉴스를 틀어놓고, 이삿짐을 정리하며 그나마 새 집에 오래 머물며 정리할 시간이 있다며 자족했던 시간이었던 것이 위태한 평화였다. 나는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무엇에도 연결되지 않고서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책의 주인공처럼, 무엇이라도 돌보는 일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을까. 오도 가도 못하던 나의 남편은 먼 곳에서 나처럼 고립되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버틴 생명체는 커피나무 한 그루와 유칼립투스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 트위터가 없었다면 외로워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이 없었다면. 인스타가 없었다면. 핸드폰 중독이 그때 되었을까.


팬데믹이 사라진 요즘을 조심스럽게 복기한다. 불확실에 모든 것을 맡기는 그 자체가 요즘인 것만 같다. 남쪽부터 시작되는 순차적인 개화가 아닌 전국에서 한꺼번에 벚꽃을 틔우는 사월의 초입에 그 생각을 한다. 지금 생각하니 마스크를 오만 원어치 산 일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를 깨달았듯이, 나중에 지나고 보면 전쟁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하루의 시계가 가져오는 세상의 속도감에 대해서도, 복기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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