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걱정과 불안은 내려놓기
더 이상 일이 힘들다거나 관두고 싶다는 얘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푸념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었고, 때마다 적절한 조언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늘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면서도 미련하게 그 짓을 반복했다.
최근들어 엄마는 나의 하소연이 지겹다고 했다. 그럼에도 딸이 백수가 되는 것은 싫으신지 조금만 참으라며 얼렀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행사 때 본 할머니와 삼촌은 "일을 관두고 싶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격하게 반응했다.
"야무진 줄 알았는데, 왜 그럴까..."
"다른 데 가면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 같니, 아이 낳더라도 꼭 지금 직장에 붙어 있어."
할머니와 삼촌은 마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려는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보니 나는 맹꽁이가 되었다. 책도 읽을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고, 제대로 된 사고도 하지 못하고 같은 소리만 내는 맹꽁이. 심지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일도 할 수 없으니 머지 않아 어느 곳에도 쓸모 없는 처지가 될 것만 같다.
내게는 제멋대로 사는 지인(C)이 있는데 그가 조금 전 전화로 채식을 한다고 선언했다. 그에게 그러라고 하면서 나는 또 입버릇처럼 일이 하기 싫어 죽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는 내게 둘 중 하나만 하라며 거의 화를 내듯 했다.
나는 말을 돌리려 얼마 전 갔던 결혼식에 대해 말했고, 하객도 많고 모든 것이 부족할 것 없는 커플의 결혼식이라고 했다. C는 내 부러움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기준을 스스로에게 두라고 했다.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지만, C의 말대로 나는 그 커플을 부러워했고 어쩌면 그들의 미래까지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어지는 가치관에 대한 질문에도 나는 대답을 잘 한 것이 하나도 없다. C는 내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고 말했다.
어쩌다보니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미래의 목표를 경제적인 조건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히 내 자식에게 선택의 자유를 줄 만큼의 여유는 있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C가 질문한 어떻게 살라고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령 돈이 있든 없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 정해놓은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주관이 없었다. 한동안 지독하게 새겨놓았던 꿈에 대한 열망은 그저 어린 과거의 일로 치부하거나 미래 여유가 되면 할 일 정도로 미뤄놓았으며 C의 말을 빌어 나 자체가 꽉 막힌 어른 같아진 것이다.
이제야 선택의 벽에 부딪힌 듯 했다. 노선을 정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아갈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이 둘은 묘하게도 양 극단에 있었다. 전자를 택하면 지금의 직장생활이 싫어도 해야 하고, 후자를 택하면 현재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내려놓는 법. 아직은 젊으니까, 현실에 발을 내리기보다 이상에 한 발 다가가 볼까 한다. 막연한 걱정이나 불안도 이제 그쯤하면 됐다 싶다. 이쯤 왔으면 됐다.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