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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an 29. 2019

#59 자존감을 꺾는 조직

-쓰레기 상사

남편이 그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다. 제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도 밤 11시에 전화해서 욕이 섞인 말투에 갑작스러운 지시를 해댈 줄이야.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오는 웬 영화 속 깡패같은 목소리에 자극받아 임신 9개월로 나온 배가 뭉치는 듯 했다. 젠장, 기필코 저주해주리라.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회식 술자리가 보통 때보다 몇 배나 길어졌는데도 예상치 못했다. 쓰레기같은 상사가 왔다는 팩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마도 밖에서 있는 더러운 일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처사였을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함에도 나보다 한참이나 힘 있는 상대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험한 말들을 정당화하고 싶은지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니까. 순간 확연히 드러난 현실은 직장은 생명줄, 짊어진 가족은 인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남편의 꺾인 자존심과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의 회복은 으레 그랬었듯 나중일로 미뤄질 터이다.

직장을 다니며 높으신 분들의 큰소리를 듣는 것, 겪어보지 못한 일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거지같은 회사 관두면 그만’이라며 화장실에 가서 분을 삭혔다. 당장 때려치우겠다는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막상 고귀한 생계를 위협할 수는 없어 철없는 용기를 굽히곤 했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겪은 일을 말하며 위로받기도 하고, 상사에게는 소심한 복수로 마음의 찌꺼기를 게워냈었다. 남편은 내가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관두어도 된다며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경솔하게 사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난 늘 돌아갈 곳이 있어 바깥에서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남편에게 그런 여유를 주진 못했다. 남편 또한 관두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언젠가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계기가 됐다. 새삼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가 바쁜 업무 때문만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권위적이고 몰상식한 태도와 지시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

이 현실에서 회사 조직이야 그렇게 개인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갉아먹는 것이 당연시되는 걸까. 회의감이 든다. 남들처럼 단란한 가정을 유지하고픈 평범한 욕심을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팔고 귀한 자신을 팔아가며 지키고 있었나보다.

‘윗대가리들이 문제다. 사람을 쓰면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못하는 그들이 문제다. 자신의 말이 법인 양 구는 권위가 문제다. 상명하복의 군대같은 조직문화가 문제다.’

그렇지만 힘없는 소시민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자 직장생활은 이어지고 더러운 일은 손쓸 수 없으니 참 힘 빠지는 사회다.

정답처럼 생각했던 것을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아야겠다. 우리에게 최선은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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