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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취감

by E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여러 번 생각하고 매일같이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할까. 단순히 공부만 잘하면 되는걸까. 공부를 어떻게 잘하게 만들까. 가장 중요한건 자율성과 주도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아이에게 자율성과 주도성을 심어주기 위한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 To-do list 만들기이다.


하원 후에 가장 먼저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을 작성한다.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적으면 잘 때까지 계속 보게 되니 효과가 훨씬 좋다. 한구석에 찾는 이 없이 놓여있던 화이트보드가 드디어 자기 역할을 찾았다. 본인이 원하는 일부터 내가 원하는 일도 한두 개씩 슬쩍 끼워 넣는다. 도서관 가기, 핫초코 사 먹기, 망고쉐이크만들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읽기, 영어영상 보기, 샤워하기, 양치질하기 등등 하루에도 할 일이 너무나 많고 그 리스트가 한가득이다.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한 6개 정도면 적당하다. (사실 이것도 많다.)


하나씩 해치울 때마다 멋지게 쫙하고 선을 긋기도 하고 옆에 멋진 하트를 하나씩 그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부지런히 자기 할 일을 적어놓고 하다 보면 금세 자신감이 붙는다. ‘엄마 우리 책 안 읽었어-!! 빨리 읽자!’라고 재촉하는 딸을 보면 괜스레 자랑스럽고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하원이 늦은 탓에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샤워하는 시간은 주전자를 가지고 놀다 보면 30분은 훌쩍 넘긴다. 마음이 바쁜 건 나 혼자인가, 어디선가 보드게임을 꺼내와 엄마 나랑 한판만 해!라고 한다. ‘계획에 없었는데?’라고 반문하니 ‘그럼 써넣으면 되지!’ 하며 보드마카를 나에게 넘긴다. 여러가지 일들을 끝내고 나면 보상으로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스티커판에 붙인다. 이제 좀만 더하면 원하는 장난감을 갖게되리라.


최근에는 옆에 새로이 칸을 만들었다. 엄마가 할 일이라는 칸이다. 내일 회사에가서 슈퍼스타 티니핑 색칠공부를 뽑아오기, 맛있는거 만들어 주기, 나 데릴러 오기란다. 자신이 원하는 걸 적고나니 아주 뿌듯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 이거 꼭 꼭 지켜줘야해! 적는 것에 대한 효과인가. 회사가면 그리도 까먹었던 색칠공부 출력이 그날따라는 잘 기억난다. 나도 멋지게 해내고 쫙 그어보리라 다짐하며 딸을 위한 색칠공부를 프린트한다.


바라건대 이 습관이 오랫동안 계속되도록. 본인만의 작은 계획들을 세우는 게 너의 주도성에 도움이 되기를.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바꾸면서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해내는 너이기를. 그것이 너의 나날에 행복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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