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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O Apr 01. 2021

봄에 걸은 이야기.


 3월에는 꽤 많이 걸어 다녔다. 지난 1년 동안의 정체를 만회하는 걸음이 되길 바랐다. 

동묘를 다시 한번 다녀왔다.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곳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파는 토스트를 다시 한번 먹고 싶기도 했다. 평일에도 그 번잡함은 여전했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시끌벅적한 장소는 의외로 드물다. 그것도 대낮에만. 길게 걷고 싶었기에 따로 무언가를 사진 않았다. 나 같은, 기분만 내러 오는 사람을, 이 곳의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보지 않을까? 실속 없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눈으로만 훑으며 쓱쓱 걸었다. 다음에는 꼭 이 곳만을 위해 오리라고, 변명 같은 다짐을 했다.  

그대로 큰길을 따라 덕수궁까지 걸었다. 중간중간 친구들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지만. 백수는 나 하나뿐이다. 얼굴 좀 보자는 말이, 나는 유유자적하고 있노라는 자랑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덕수궁에 꽃을 보러 왔다고 하니 친구는, '진짜 너무 좋은 삶'이라고 했다. 그런가? 

멀리서 보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항상 불일치하다. 실은, 최근의 마음은 조급하다. 때문에 가장 조급과 멀리 떨어진 일로 나를 추스르고 싶었다. 일의 시작이 늦어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를 이해시키고 안심시키며 걸었는데. 어쩌면 친구에게 저 소릴 들으려고 이리 일이 지체되는가? 싶었다. 마침 이 봄날에.




 다른 날에는 창덕궁을 걸었다. 홍매화가 아주 예쁘게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은 몇 그루만 먼저 꽃을 피웠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장소에는 사람이 많다.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곳으로 간다. 살면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창덕궁의 홍매화가 그중 하나라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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