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서'
우중충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비에 젖어 물기가 흥건한. 매상이 부진한 카페 사장이 늘어놓을만한 이야기를.
무슨 일이건 시작을 하고 나면, 세상의 흐름에 흘러들게 된다. 크게는 날씨나 나라의 정책. 소소하게는 카페가 위치한 지역의 상하수도 공사나 카페 옆에 위치한 교회의 흥망성쇠 같은 흐름들. 직장인들의 삶도 물론 그렇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업의 가장 어려운 점은 나 혼자 잘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요령이 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할 때. 나는 비로소 스타트 라인에 선다. 세상의 이런저런 일 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기대만큼 잘 해낼 수 없다.
’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라고 세상에 되물어봐야 소용없다. 조금 더 고약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숨을 잘 쉬는데?! 내 삶은 왜 성공적이지 못해?!’라고 소리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내 경우에, 지금까진 날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도 비 내리는 날씨.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비가 내렸고. 나의 작은 카페는 폭우 속에 고립된 작은 섬 과도 같았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졸다가 본격적으로 꿈을 꿨는데 그 꿈의 결말까지 안전하게 확인하고 깨어날 정도로 인적 없고 고요했다.
친구는 내게 확인하듯 말한다. ‘비 내리면 카페 분위기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손님들 많이 올 것 같은데?’ 맞다. 비 내리는 날 카페는 너무 좋지. 하지만 나는 너의 지난 일주일을 알고 있다. 너는 비 내리는 주말 집에 드러누워 ‘집이 최고지’라며 하품을 쩍쩍 해댔다. 너의 하품하는 소리가 우리 카페까지 들리는 바람에 나까지 하품을 했단다. 하지만 괜찮다. 나를 조심시킬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와 함께. 그것은 아주 평화롭고 아늑한 일이다. 만들어야 할 메뉴가 없고 커피를 마셔줄 손님이 없다. 나는 카페에 내가 좋아하는 곡을 틀어둔다. 천천히 나를 위한 커피를 내린다. 무려 핸드 드립으로. 꼼꼼하고 세심한 손길을 나를 위해 쓴다. 때로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쯤 되면 나는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정말 손님이 오길 바라는가? 이 예민한 질문에 답을 하자면 ‘당연하다!’ 이 좋은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누리면 좋겠다. 떨칠 수 없는 자영업자 마인드에 시달리며 초조하게 이 비를 바라보는 것도 싫다. 오셔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세 시간을 앉아있다 가셔도 좋으니 부디 이 날씨의 카페를 즐겨준다면 좋겠다.
세상의 흐름에 맞춰서 최대한 오래 지속 가능한 형태의 카페를 만들었다. 테이블과 조명. 카페의 이름에 조금은 나의 고집을 넣을 수 있고. 주변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받기로 결정할 수 있고. 대신 좋은 원두와 재료로 카페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그럼에도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초조하다. 당연하다. 나는 그저 조금 길게 버텨낼 여력이 있는 것이지 실패를 해도 상관없는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나는 기다리는 마음에 돌입한다. 비를 한 번 바라보고 그라인더를 세팅한다.
다시 한번 비를 바라보고 이번에는 재료들의 상태를 체크한다. 다시 비를 바라본다. 냉장고를 정리한다.
고상하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당분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조금씩, 카페를 새로 만들어가기로 한다. 내가 나의 카페를 즐기기 위해서는 성과와 자격이 필요하기에. 나와 손님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방식으로 지나는 계절을 누릴 수 있는 카페를 만들어 가자고 다짐한다. 카페를 찾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결국은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