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멜버른 외식마피아양성소 Attica, Cumulus
한국과 호주의 시차가 2시간이라, 일반적인 한국퇴근시간인 6-7시에 맞춰서 일을 마무리하다보면 시간이 8시를 훌쩍 넘어버린다. 나는 어짜피 6시반이면 눈이 떠지기에(한국시간 새벽4시 반..)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데다가 누가 굳이 한국 퇴근시간까지 일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빡세게 안하고 빈둥빈둥 해서 그런가.. 항상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데다가 신기하게 일은 언제나 막판에 몰리기에.. 결국 또 거의 9시가 되어서야 업무종료후 저녁식사를 계획한다.
멜버른의 식당들은 10시면 문을 닫는 곳들이 많아서 9시에 밥을 먹을라치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러면 결국 발걸음을 와인바로. 술을 좋아하는 1인 여행객에겐 Bar가 아주 최고다. Bar 형식이라 혼자 테이블 차지하는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식사를 이미 하고 왔을 것을 가정' 한 Food메뉴라서 음식의 양이 적어서(가격도 그만큼 낮으니) 혼자서도 다양한 메뉴를 먹어볼 수 있으며 가끔 Bar 반대편의 바텐더/소믈리에 분들이 오며가며 다정하게 말도 걸어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는가.
아 참고로 이건 팁인데, 해외여행을 혼자갈 때엔 '바테이블이 있는 유명식당' 을 노려보자. 아무리 인기있는 식당이라도 Bar테이블 듬성듬성 애매한 1인 자리가 반드시 있어서 80%의 확률로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고 기다리더라도 20분 이상 절대 기다리지 않는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멜버른에서 온 이후로 매일 서로 다른 와인바들을 다니며 비교해보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데, 어제의 행선지는 Bar Liberty 라는 곳. 지나가다 스프레이로 직직 그어버린 멋드러진 간판을 보고 '오, 주인장 힙 좀 아나본데!' 하고 바로 검색하고 구글별점 4.7점이라 바로 마음이 동한 곳이다 (별점개수가 100개 이상이 있다는 가정 하에, 보통 구글별점 4.2점 이상이면 큰 문제 없이 만족스러울 수 있고 4.5점 이상이면 오,괜찮은데!!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바키피셜 전해드립니다)
직전 블로그글에 소개한 바 있는 Cumulus.inc 이 멜버른의 다이닝신의 주역인 또 하나의 이유는, 현재 멜버른에서 핫한 레스토랑 창업자들이 대부분 Cumulus.inc 의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식당이 Attica 이다.
Attica 는 매년 발표되는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세계 50대 레스토랑)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호주 단 한 곳의 식당이며 Modern Australian 을 표방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찾아보니 재작년 32위, 작년 20위로 순위 꾸준히 상승중. 그만큼 호주에서 가장 예약이 어려운 식당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
실제 멜버른 레스토랑의 홈페이지들을 들어가보면 본인이 Cumulus 혹은 Attica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적어놓은 곳들이 많고 이것이 하나의 오픈초기 홍보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Bar Liberty 의 크루 중 한 명인 Banjo Harris Plane도 Attica 의 대표소믈리에로 오랜 시간 일하다 독립한 케이스. 호주에서는 이렇게 Crew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각기 다른 컨셉의 매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음식으로 유명한 Crew' 와 '와인으로 유명한 Crew' 가 만나 JV(Joint Venture) 형태의 새로운 식당을 내는 경우도 매우 자주 일어난다. 한국에서도 프릳츠나 카페어니언과 같은 카페들이 외식/크리에이티브 분야의 크루들이 각자의 재능을 담아낸 JV로 탄생하기도 했고, 성수동의 포지티브제로라운지(재즈바)와 렁팡스(프렌치식당)의 크루들이 Boyer(내추럴와인바) 를 함께 내는 등 합종연횡의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Banjo Harris Plane 을 검색해보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앱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라는 것! 그것도 이미 2018년에 총 2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은!
이름하야'The Wine Gallery'. 검색최적화도 신경 안쓴듯한.. Bar Liberty 의 힙함은 누구의 작품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이 고리타분한 이름을 가진 앱서비스는 'IT기술을 활용하여 고객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호주에서 가장 큰 온라인 와인커머스가 되는 것' 을 목표로 한다고. '호주 맥쿼리증권에서 잘나가던 Tom과 유명소믈리에 Banjo가 만나 The Wine Gallery 라는 Netflix for wine 을 지향하는 서비스를 만들었고 2018년에 20억을 투자받았다'는 내용 보고.. 나는 왜인지 회사가 이미 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자들의 인터뷰내용이 나에게 엄청 많은 삐딱선을 타게 했기 때문에.
그럼 하나씩 뜯어보자. (다시 말하지만 이건 작정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 판단이며 아주 섣부르고 건방지게 넘겨짚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호주 맥쿼리증권에서 잘나가던 Tom => 큰 그림만 보고 손에 흙 안 묻혀본, 엑셀로 이미 엑싯플랜 다 돌려본!
유명소믈리에 Banjo => 오호라 스타트업을 부업으로! 내가 와인 잘 아니깐 개발자 시켜서 뚝딱뚝딱 성공!!
The Wine Gallery => 검색최적화 신경 안쓰고 포부만 크지 뾰족하지 않은 작명!
Netflix for wine => 오호! 왜 안나오나 했네! 화룡점정 Buzzword!
2018년에 20억을 투자받았다 => 돈 많이 벌던 창업자들은 그만큼 돈을 쉽게 쓰는 법. 이미 돈 떨어졌을지도!
확인해보니 The Wine Gallery 사이트는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Good Pair Days 라는 이름의 '와인구독서비스' 로 새롭게 변경하여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었음. (서비스이름을 바꾼건 정말 잘한 일이야...) 몇 가지 질문들을 하면 거기에 맞는 3병의 와인을 추려서 보내주는 건데.. 좀 뻔하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은 일더라. 내가 호주에 살았으면 몇 번은 써봤을 거 같기도. 호응이 어느 정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별다르게 성과를 파악할만한 자료가 없어서, '호주사람들이 얼마나 Good pair days 를 검색' 하는지 살펴보려고 Google trends 를 체크해봤다. 검색량이 증가된 시점으로 봐서 대략 2019년 5월에 서비스를 새롭게 오픈한 듯? 약 6개월 된 따끈따끈 서비스네!
이걸로만은 알기가 어려우니, 위에서 언급한 유명식당 Attica, Cumulus , 그리고 그보다는 좀 니치한 와인바 Bar Liberty 를 같이 놓고 비교해봄.
(fyi,어떤 느낌인지 보려고 한국 유명식당, 니치한 식당, 그리고 Good pair days 와 비슷한 단계일 거라고 생각하는 스타트업도 같이 돌려봤음.)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주 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런칭한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음' 정도로 마무리.
작년 9월에 20억을 받았으니까, 수지타산을 맞춘 상태가 아니라면 지금 즈음 걱정이 많은 단계일 거 같다. 진짜 힘든 여정이실텐데.. ..그래도 이왕 시작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Bar Liberty 사장님, 제가 사장님 가게는 정말 좋아합니다. 스타트업도 화이팅.
잠시 Bar Liberty 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여기 괜찮음. 호주의 유명 미식잡지가 선정한 2018년 베스트와인바이기도 함. 와인 말고 다른 주류들도 다양하게 갖추어놓고 있고, 구성원들이 쾌활&친절하며 판매하는 주류에 대한 이해도 높음. 친절한 와인서버분이 계속해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센스로 챙겨주셨고, '너 끝나고 어디 갈거니?' 여기 사람들 잘 모르는데 완전 짱인 칵테일/위스키바야, 가봐' 하고 친절하게 위치까지 적어주심.
Above Board 라는 곳. 검색해보니 무려 구글별점이 4.9 니깐 멜버른여행 하시는 분들 꼭 들러보길. 지금까지는 #멜버른와인바 중에 #Marion 과 #BarLiberty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