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셰프의테이블에도 나오는 벤쇼리의 이야기는 보너스!
호주 멜버른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Attica(아티카) 는 2010년 처음 World's 50 Best Restaurant list 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호주 레스토랑으로는 첫 번째 순위진출이었기에 화제를 불러옴과 동시에 아티카가 인기를 얻고 본격 '스타 식당'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아티카는 현재까지도 매 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정확한 순위는 아래와 같다.
73위(2010) - 53위(2011) - 63위(2012) - 21위(2013) - 32위(2014, 2015) - 33위(2016) - 32위(2017) - 20위(2018) - 84위(2019)
* 참고로 2019년 순위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이후 심경인터뷰(!)에서 "항상 이름을 올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 순위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호주에 방문하는 평가자들이 많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 (이게 마냥 핑계라고 볼 수 없는게, 2017년 World50 행사가 멜버른에서 열렸고 그 때에 방문한 평가자들이 Attica 를 당연해 갔을 거고 그 것이 2018년 순위 급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다음 해엔 '굳이..' 라는 생각에 많이들 안가지 않았을까?)
Attica 는 또한 호주의 '블루리본' 이라고 할 수 있는 Hat list(미슐랭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모자 1-3개로 평가) 에서 매년 모자3개를 계속 획득하고 있는 몇 안되는 레스토랑 중 하나이며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Netflix 의 인기 푸드다큐프로그램인 Chef's table(셰프의 테이블) 1부에도 다뤄진 바 있다.
이러한 성공의 주역인 Ben Shewry 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멜버른, 런던, 웰링턴의 여러 식당에서 경력을 거친 후 2005년 Attica 의 헤드셰프로 영입되게 된다. 그러나 식당은 두 명의 셰프를 거치면서 이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다가 야심찬 젊은 셰프 Ben Shewry 의 도전적인 음식들에 있던 손님들마저 발길을 끊게 되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수 년 간의 부침을 견뎌낸 후,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10년 '세계 50대 레스토랑' 순위(50위까지 발표할 거 같지만 사실은 120위까지 발표함)에 73위로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 2015년 Ben Shewry 는 부부오너로부터 식당을 아예 인수하면서 본격 오너셰프의 길을 걷게 됨.
Attica는 이제 호주, 특히 멜버른의 자부심같은 식당이라서 호주의 Food 매거진(Good food, Broadsheet 등)의 기사,리뷰들에서조차 그 자랑스러움이 절로 느껴진다. '호주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여기가 최고지' 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
멜버른 일정을 준비할 때에 살펴본 글들에서 'Foodie 라면 Attica 는 꼭 가봐야지. 단, 네가 예약할 수 있다면 말이야' 라는 식의 내용들을 하도 많이 본 상태라 기대감이 컸다. 해외에서의 Fine dining 경험 중 가장 좋았던 곳은 태국 방콕의 Gaggan(2019년 World50 세계7위) 이었는데, 그 때만큼 좋을지 궁금했음. 역시 호주의 자부심인 곳이라서 예약은 쉽지 않았고, 매일 심심할 때마다 사이트를 접속해서 '혹시 남는 자리가 생겼나' 를 수 십 차례 살펴본 끝에 드디어 예약에 성공했음. 한 달이나 멜버른에 머무르는 것이었기에 가능했던!
Modern Australian cuisine 을 표방하는 Attica 는 호주에서 나는 식재료들을 주로 사용한다. 이를 위해 식당에서 사용할 채소를 기르는 작은 농장을 직접 운영하며, 호주의 일상적인 조리법, 재료를 기본으로 타국의 것을 조금씩 가미한 퓨전식(Modern Australian 을 표방하는 멜버른 식당들이 다 이런 식이었던 듯. '타국'중에서도 특히 아시안을 많이 활용) 음식들. 그 지역에서 나는 작물을 활용하고 너무 많은 터치를 가미하지 않은 조리법을 사용하여 자연과 사회를 연결하는 것(Reconnect Nature and Cultural Society)을 추구하는 요리라고.. (그런데.. 먹어본 후의 소감으로는 딱히 '자연주의 요리법 이런 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느낌은 있었음. 처음엔 그랬는데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 조금씩 바뀌었는지도) 음식 뿐 아니라 공간과 식기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디자이너들의 것을 활용하여 '이것이 호주입니다' 를 온 몸으로 보여주려 노력하는 식당이었음.
위의 사진은 지난 글에 소개한 Andrew McConnell 과 Attica 의 Ben Shawry 가 함께나온 투샷이라 가져와봤음. 멜버른 미식신의 두 셀러브리티 ㅎ
본격 식사소개. ($표시는 모두 호주달러, 호주달러 현재환율기준 1달러 약 8백원)
단일코스($295)요리로 준비되며, 음료페어링을(주스페어링 $85, 와인페어링 $185 ,주스+와인페어링 $120 세 종류) 추가할 수 있다. 언제 또 와보겠냐는 생각으로 와인페어링 주문. 지금 환율로 약 40만원 수준인데, 싼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동급의 전세계 파인다이닝들을 생각하면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하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
참고로 기억을 쥐어짜내서 소개는 해볼텐데 내 영어가 원래 짧고 호주발음 더 어렵고.. 기억력도 엉망이라..중간중간 기억 안난다고 말하는 부분 있을 것임 ㅎ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음 ㅎㅎ
코스의 시작은 1. From Out Back. 접시에 담긴 다양한 재료들을 이리저리 골라서 식당에서 직접 기른 쌈채소에 싸 먹는 메뉴. 개미도 있고 꿀도 있고 관자도 있고 만니만니 에 우측 중앙에 보이는 거 김치 맞음. 다양한 조합을 시도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작위로 집어들어도 잘 어울렸다.
두번째는 2. Happy Little Vegemite. 베지마이트는 호주의 오래된 전통잼인데 잼이라기엔 매우 짜서.. 우리네 장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맞다. 짭쪼름하면서 폭신한 번과 어우러져서 좋은 에피타이저가 됨.
3. An Imperfect History of Ripponlea. Attica 식당이 위치한 곳이 Ripponlea 라는 지역인데 타르트 각각이 동네의 역사를 하나씩 담고 있다고. 까만색은 백인의 침략을 받기 전 원주민들을, 빨간색은 까먹었고(죄송..) 맨 위의 것은 '유대인지구' 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유대인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것. 검정색부터 시계방향으로 먹어야 하는 타르트.
4. Emu Liver Bagel : 에뮤는 호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타조류의 동물인데 그 동물의 간을 저 위에 발라서 구운 베이글임. 간을 스프레드 한 다음에 거기에 푸룬잼을 올린 거.
5. Stickey Wattle and Pearl Dumpling : 와! 기억 하나도 안나! 미안합니다!! 떡 느낌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기억 밖에 없네요..
6. Saltwater Croc Ribs : 서버의 설명을 듣고 너무나 놀랐던, 바로 그 악어고기. 원시의 느낌을 살리면서 먹어보라고 칼도 저렇게 원시느낌으로 주고 손으로 발라먹게 한다. 뼈들이 중간중간 크고 작게 들어있어서 잘 해체해먹어야 함. 생선과 닭고기의 중간정도 식감이었다. 악어고기라 신선했는데 식감자체가 굉장히 달랐던 느낌은 아니었음.
7. Hand Picked Crab and Wattle Bread : 사진엔 없는데 Wattle 이라는 호주에서 자라는 씨앗품종으로 만든 공갈빵과 직접 잡은 게의 살을 으깨 마카다미아넛소스를 버무린 것을 함께 먹는 음식. 전체 요리 중에 가장 시큰둥 했음.
8. Burru with Truganini : 이 요리 이름의 출처를 모르겠는데...캥거루를 Burru 라고 부르나? 아무튼 이 것은 캥거루육회임! 저 안에 살짝 보이는 열매는 맨 위의 From Out Back 에도 등장한 '반니반냐'(하하..^^;; 대충 이런 이름이었음) 라는 열매고.. 저 위에 채소도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아무튼 캥거루고기가 아주 쫄깃쫄깃했음.
9. Blue Moons Cooked in Kelp : 해변가에서 셰프가 어렸을 떄에 부모님이 해주시던 감자요리조리법을 재현한 것이라고. 버터와 감자를 한데 넣고 해초로 감싼 뒤에 모래구덩이를 파서 불을 내어 그 열기로 감자를 익히는 방식.
10. Marron with Sunrise Lime : 호주에서 볼 수 있는 귀한 가재라고. 머리와 꼬리를 잡고 뒤틀면 살이 아름답게 발라져나온다. 태국풍의 시큼하고 약간은 꼬릿한 과일소스와 함께 먹는데 요리 자체로는 만족도 제일 높았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큰 가재의 살을(그것도 남이 발라놓은!) 아낌없이 먹어보겠나.. 하는 생각에 히히
11. Welcome to the Shelter : .
가재까지 먹고 나니, 서버분이 와서 "잘 즐기고 있니? 여기까지가 우리 메인코스이고 잠시 자리를 이동하려고 하는데 나를 따라오렴" 한다. 어리둥절하지만, '오 뭔가가 있어!' 하는 기대감을 나가보니 흡사 야외세트장같은 공간으로 안내함. '미래의 대피소는 이런 모습일거야' 하고 셰프가 상상하여 구현해놓은 공간이라고!
맥주를 들고 나오면 코인 한 개 주는데 그 동전으로 아래 자판기에서 원하는 구호식품을 뽑아먹을 수 있음. 젤리, 사탕, 과자 등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돌리는 데로 다 나와서, 여러 개를 맛볼 수 있었다.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만든 불량식품! 느낌!
원하는 바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즉석에서 만든 미니 햄버거를 준다. 추운 곳에서 맥주와 미니 햄버거를 먹고 있으니 진짜 조난당해서 대피한 느낌이라 어릴 때 야외에서 역할놀이 하면서 신나던 느낌이 났음. 햄버거를 만드는 분 옆에서 보면서 먹었는데, 만드는 스킬이나 음식 자체의 완성도는 높지 않아서 그건 좀 아쉬웠음. (그 엉성함 조차 의도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고...) 아래 작게작게 보이는 사탕들이 아까 자판기에서 뽑은 것.
햄버거를 다 먹고는 신나는 기분으로 다시 자리로 이동한다. 이제 디저트 타임.
12. Finger Lime and Sugarbag Honey : 해삼같이 생긴 이 것은 호주에서 자라는 Finger Lime 이라는 열매. 오랜 시간동안 찌고 구워서 쫀득거리는 식감을 만들어냄. 저 크림색소스가 뭔지 모르겠다. Sugarbag Honey 가 그 소스 위에 뿌려져있는 형태. 맛이 솔직히 기억이 안나..
13. Black Ant Lamington : 야호 개미다!! 저 검정색이 죄다 쪼끄만 개미야! 저 케이크 자체는 호주의 전통적인 디저트 모양을 띄고 있는데 (흡사 터키디저트같이 생겼다) 그것을 개미묻힌 상큼한 아이스크림으로 바꾸어냈다. 모양도 예쁘고 개미가 신선했고 맛도 좋아서 좀 생각나는 디저트.
14. Rainforest Cherry Ripe : Cherry Ripe 이라는게 초콜렛으로 코팅되고 속에 체리맛크런치가 들어있는 호주 과자임. 그 것을 Attica 가 파인다이닝스럽게 풀어낸 것. 맛있었음. 초콜렛은 맛있지 언제나.
이렇게 총 14코스를 먹으면 전체 4시간 반의 여정이 모두 끝나게 된다. 6시 10분 정도에 시작한 디너가 나올때가 되니 거의 11시가 되어 있었음. 즐거운 경험이었고, 저녁을 먹는 내내 호주의 다양한 문화나 식재료들을 듣고 그 것을 Attica 가 어떻게 변주했는지 생각하며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말해서 "호주의 것들로 채워진 파인다이닝 중 가장 최고의 것" 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
해외에서 경험한 파인다이닝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태국의 Gaggan 이었어서, 그 곳과 좀 비교를 하게 되는데.. 구성이나 완성도 면에서는 Gaggan 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그러나 충분히 재미있었고 돈이 아깝지 않았던 시간이었음.
왜 2019년에 이렇게 순위가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식사와 별개로 좀 아쉬웠던 것은 아래와 같다.
너무 긴 식사시간 : 식사시간이 긴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의도된 '5시간' 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손님을 받아버려 중간중간 식사가 정체되어 생긴 5시간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에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꽤 많이 지체된 적들이 있어서 전체 여정에 흥분을 조금 반감시킴
어수선한 야외공간 : 신선하고 즐거웠으나, 이 정도의 식당이라면 고객을 안내할 때부터 다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그 과정이 매끄럽도록 안내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언제 다시 들어가야 될지 몰라 우물쭈물 하다가 우리끼리 알아서 들어갔음. 다들 그랬음.
평가 애매한 와인페어링 : 인심 넉넉한 페어링(특히 식전주 세 번 따라줌)이었으나, 음식과 와인이 어울려져서 서로의 맛을 더 증폭시켜주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파인다이닝 식당에 가면 보통 전체 코스 중 한 두 번은 소믈리에가 와서 직접 따라주었는데, 여기는 홀 내에서 소믈리에로 추정되는 사람을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와인에 대한 설명은 잘 해주셨으나 왜 이 음식에 이 와인을 선택했는지 알려주지 않아 아쉬웠다. (음식과 와인을 먹으면서 충분히 그 차이를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면 이런 설명 필요없었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이상, Attica 후기였습니다. 호주가 잘 알려져있는 것에 대비해서 Attica 에 대한 글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 좀 열심히 적어보고 싶었는데 능력의 부족으로 그러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