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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Sep 20. 2020

[책] 일곱 해의 마지막 by김연수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다채롭게 곱씹어볼 수 있는 좋은 책 같은데 관련해서 평론가분들의 글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다들 어떻게 읽었는지 댓글로라도 혹시 공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막 적어봤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라 읽으면서 ‘난 그렇게 안 읽었는데? 넌 뭘 읽은 거냐’ 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텐데 읽으신 분들 생각 공유해주시면 엄청 좋겠다!)


    이 책은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이 북한에서 1957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가 1962년 절필하였다’ 는 사실 하나를 가지고 김연수가 새롭게 창조해낸 세계다. 그간 김연수의 책 중 가장 좋았다. ‘이 분 소설로 시를 쓰셨군’ 하고 생각될 정도로 작품의 구성과 문체 모든 것이 시를 읽을 때에 우리가 느끼는 것들과 닮아 있었다. 


    독자에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모든 감각을 일깨워주려고(생각해보니.. 미각을 깨우는 대목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님 다음엔 미각도 부디 깨워주세요ㅎㅎ)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하며 만들어낸 책이 오랜만이라 ‘맞아, 이런 책도 있었지’ 하고 감사해하며 읽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강쇠바람이 독골 깊은 골짜기를 가을빛으로 물들이면, 남쪽으로 트인 하늘로는 진청의 허공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졌다. 그 하늘 아래로 아직은 초록인 무와 배추, 누렇게 영근 조와 귀리, 땅을 뚫고 올라온 불꽃처럼 군데군데 자리잡은 단풍이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책 속에서 나는 온전히 겨울을, 스탈린 거리를, 끝없이 달리는 기차의 화물칸에 실린 어린아이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구성 또한 작가의 의도를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뒤죽박죽 가로 지르는 입체식 구성. 그게 뭐가 특이하냐 하신다면..이 책의 경우 한 챕터 당 10장이 채 되지 않는(3-4장 짜리도 빈번) 짧은 이야기들이 시간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열거되어 있다 보니 이를 독자가 선형적으로 이해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작가가 “알겠지? 스토리에 너무 집중하지마, 그냥 느껴. 그러다 보면 도달하게 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책의 표지처럼. (아래표지이미지 참고) 계속해서 왔다갔다 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윤곽이 드러나는 느낌으로. ‘와..표지까지..이 분 작정하고 쓰셨군!’ 하는 생각이. 


요 표지 말이야


    잘 쓴 소설을 만나 기쁜 것도 있었지만, 이 책이 특히나 좋았던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주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안정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생각해보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것이라고 착각한)지 불과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인류 전체 역사를 놓고 보면 최근의 평온이 오히려 매우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소설이 담아내는 1957년부터 1963년의 북한은 주체성논의가 활발해지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규정되는 끊임없는 숙청의 역사, 이를 통한 김일성 우상화가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던 시기. 그야말로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가 무한반복되며 사회/정치/경제적으로 매우매우 불안했던 때. 작가는 굳이 이 시기의 북한을 골라 소설의 무대로 올렸다. 물론 김연수작가가 이 소설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보다 훨씬 전일 것이라 지금의 상황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고 속단하긴 어렵지만 작품의 곳곳에서 나는 지금의 현실과 공명하는 대목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자백위원회의 모습이 지금 대한민국의 청문회(또는 대정부질문)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여 흠칫 놀라기도 했지. 그리고 이런 대사들.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89p)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 냉소보다는 사랑을, 낙담하기 보다는 지치지 않고 ‘마음이 있다면 행동하기를(p172)’ 그리고 시인은 계속 노래하기를 청한다. 내게는 이 책이, 특히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독자들, 그리고 동료 예술인들에게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계속해서 노래하고 함께하자는 애정어린 편지로 느껴졌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기행에게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쇠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172p)


   

‘그래, 그렇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p157)’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급하게 글을 마무리. 끝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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