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하나로 배우는 마음

“쏙 빠졌는데, 마음은 꽉 찼다”

by 그리니 의 창가


화장을 지우려 세면대 앞에 섰다.
눈 화장을 지우려 오일을 들고 뚜껑을 열었는데,
뚜껑이 굴러가더니 세면대 구멍에 쏙 하고 빠져버렸다.

'이런, 큰일이다.'
세면대가 원래 물이 잘 빠지지 않아
가끔 뚜껑을 뺐던 게 문제였을까.
뚜껑은 기가 막히게 그 틈에 맞춰
정확하게 박혀버렸다.

손으로 꺼내려다 미끄러워 실패.
휴지를 넣으면 나을까 싶어 눌러 넣었더니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결국 젓가락까지 등장했지만
세면대 앞은 난장판,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한참을 씨름하다 욕실 밖으로 나왔다.
자는 남편의 등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땐 좀 도와주지… 저 인간은 정말."

그때 아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엄마, 잠깐만…"
덜그럭, 쿵쾅.
물 빠지는 소리가 들리길래
“해결됐어?” 반가워서 물었더니,
“아니… 몽키 스패너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고개를 흔들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래, 그냥 내일 남편 깨우자.
그렇게 포기하고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
남편이 무심한 얼굴로 들어왔다.

“뭐야,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쏙,
마치 매직처럼 뚜껑을 빼내 버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볼일을 보고
다시 자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
그 모습이 어쩐지 조금 미안하고,
많이 고마웠다.

뚜껑 하나에 이토록 오락가락할 줄이야.
마음은 조급하고, 상황은 엉망이었는데
결국 해결한 건 말없이 도와준 누군가였다.

어쩌면 우리는
큰 도움이 아니라,
필요할 때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세면대 앞에서 마음을 배울 줄은 몰랐어요.
결국 누군가의 다정한 ‘쏙’ 한 번이
마음을 단단히 해주더라고요.


오늘도 소소한 고장 속에서
사랑을 다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