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07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W의 집수리 현장

by 사각사각 Mar 22. 2025

W는 매우 성실하고 바지런하다. S가 이사를 하기 전, 이 주 정도의 시간 동안 집은 비어 있었다. W는 집에 들러서 이것저것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역시 W는 계획형 J가 분명하다.      


북쪽 베란다 벽은 습기가 차서 페인트가 벗겨진 곳이 몇 군데 있었다. W는 각종 공구와 페인트를 사 와서 벽을 수리했다. 나무 바닥이 상한 곳은 니스를 칠하고 딱 알맞은 크기의 정리함과 색상이 산뜻한 네 개의 분리수거 함으로 덮었다. 집주인이 한가로이 구경하는 동안 W는 벽을 칠하고 블라인드를 새로 달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사 가기 전 마지막 주말, S는 느지막이 도착하여 한참 공사 중인 W를 뒤에서 한번 껴안고 아파트 내의 작은 무인 카페로 향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커피 맛도 괜찮아서 눈여겨보던 장소다. 이사 갈 집에 도착해서는 늘 커피점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라떼 두 잔을 사서 오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다. 커피 머신 옆의 자판기에는 함께 먹을 스콘과 쿠키 등도 있어서 호기심에 구매해봤고.      


천 세대가 넘는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이니 단골들이 많은 듯 쿠폰이 벽 가득 붙어있었다. 10잔을 모으면 한 잔이 무료라니 하나하나 모으며 뿌듯하기도 하고.      


집은 W가 마룻바닥을 수리하느라 니스 냄새가 진동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마스크를 씌워주고 페인트가 묻을 새라 앞치마도 입혀줬다. 리본으로 목과 허리를 묶어야 하는 앞치마라니 큭큭.      


W는 집수리에 여념이 없고 마스크를 벌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꽂은 빨대를 물려줬다. 쫀쫀한 스콘도 잘라서 한 입. 여기 스콘 맛있는데요? 멀리 나가기 귀찮은데 날마다 쥐 방구리 드나들 듯 카페에 갈 생각에 마냥 흐뭇하다.      


벽에 꼼꼼하게 페인트를 덧바르고 휴식 시간에 W와 베란다에 놓은 테이블 앉았다. 도시가스 공사의 굴뚝이 보이고 전망이 그리 좋지는 않으나 어둑어둑할 무렵에는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는 야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커피나 와인 한잔을 하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더 무르익겠지?      


리모델링이 된다면 아파트를 공원처럼 조성할 것이라고 하던데. 푸른 나무가 배경이 되면 한결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도 있겠지만 아파트 게시판을 쓱 둘러보니 주민들 사이에는 찬반양론이 팽팽한 모양이다. 분담금이 몇억 대가 되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고 결국에는 집을 팔고 더 멀리 외곽으로 이사를 나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반대를 할 수밖에는.      


오전 작업이 끝난 W와 소파에 누워서 중고 물품이나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할 살림살이를 의논했다. 소파는 앙증맞은 크기여서 겨우 한 사람이 누울 공간밖에는 안 된다. 아, 다음에는 폭을 보고 사라구요. S는 옥신각신하며 괜스레 통박을 줬다.      


W와 좁은 소파에 포개 누워서 이 카펫은 어때? 아, 거실에 하려면 사이즈가 200x250은 되어야 해. 이 티브이 장식장 살까? 웅, 괜찮아 보여요. 이 그림 마음에 들어요? 소파 위에 걸으려고? 이런 대화를 나누며 게으른 오후를 보냈다. 어느새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치근덕대는 W를 떼어놓고 쇼핑몰에 갔다. 아직도 티브이와 청소기 등등 구매할 것들이 줄지어 서 있다.      


주말 세일 인지 백만 원을 할인해 주는 티브이를 덥석 샀다. 로봇 청소기를 살까 했지만, 티브이만큼이나 비싼 가격을 보고 망설였다. 판매원이 육십이 넘으신 분들이 로봇 청소기를 많이 구매하신다고 조곤조곤 설득했다.     

“아직 육십이 되지 않았으니 전기 청소기로 하자고요. 하하” 쇼핑으로 분주하나 다정한 주말의 시간이 흘러간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토요일 연재
이전 23화 당근에서 살림 구매하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