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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May 13. 2016

화장을 했던 곳, 탄자니아 잔지바르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13. 탄자니아 잔지바르(1) 스톤타운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Day1,2. 드디어 여행의 시작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이전글] Day12. 도로 위 다르에스살람


화장, 더 나아가 꾸밈이라는 행위의 번거로움과 귀찮음

한 달간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의 눈을 위한다며, 나름의 공익적 사명감을 띠고 매일 화장을 했다. 바쁜 아침마다 쉐도우를 톡톡 바르고, 아이라인 꼬리를 어디까지 뺄까 고민하고, 뷰러로 속눈썹을 올리다가 가끔 눈꺼풀이 집혀 아파했다. 

그랬던 내가 아프리카에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요“, ”화장이라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의 얼굴을 찾았어요“, ”아프리카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곳이에요“와 같은 낭만적이고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니 화장, 더 나아가 꾸밈이라는 행위는 너무나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로 치부되어 버렸다.      


아프리카에서 맞는 아침에, 부산스럽게 화장하던 나는 없었던 대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침낭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와 텐트를 접는 내가 있었다. 끈적거리는 선크림은 세상 모든 흙먼지를 내 얼굴에 갖다 붙이는 탓에 곧 가방 깊숙이 처박혔고, 모기와 함께하는 샤워실에서 1분이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나에게 린스, 트리트먼트란 제일 먼저 제외할 수밖에 없는 사치품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한 달 동안 딱 두 곳에서 화장을 했다. 한곳은 탄자니아 잔지바르, 또 한 곳은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다. 꾸밈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잘 정돈된 거의 완벽한 휴양지.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나도 노력을 기울여서 예쁜 사진 하나는 꼭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곳.             


향신료 투어(Spice tour), 향으로 기억하다

탄자니아 동쪽에 있는 섬 잔지바르는 아름다운 해변, 향신료, 역사유적지 등으로 유명하다. 1964년에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쳐져 탄자니아가 탄생했는데 그 때문인지 같은 탄자니아인데도 여권을 제시하고 입국카드를 작성해야 했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약 두 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마침내 도착한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라는 잔지바르답게, 거리로 발을 내딛자마자 이슬람 복식을 한 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스톤타운(Stone Town)에서 하루, 능귀비치(Nungwi Beach)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했다. 스톤타운은 석조 건물들이 모여 있는 잔지바르의 중심으로, 낡은 건물과 거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광휴양도시답게 도시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투어가 마련되어 있었고 우리는 시티 투어가 옵션으로 포함된 향신료 투어(Spice tour)를 선택했다.      


감사하게도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봉고차에 타고 향신료 농장으로 향했다. 현지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됐다. 거대한 규모의 농장을 가이드를 따라 걷다가 가이드가 중간중간 멈춰 서서 나무, 열매에 대해 설명하면 다 같이 모여들어 가이드 손바닥 위 열매의 사진을 찍고, 향기를 맡아보는 전형적인 투어였지만, ‘향신료’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국적인 느낌과 쉽게 볼 수 없는 열대나무들의 자태 덕분인지 다들 즐거워했다. 나무를 보고, 풀냄새를 맡고, 열매를 만져보고, 열대과일 먹으며 독특한 향의 차를 마시는, 말 그대로 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한 투어였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향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그 향을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가이드가 ‘가장 잔지바르스럽다’고 추천한 향수를 하나 샀다.      


시티 투어, 세월과 역사를 보다 

다시 스톤타운으로 돌아와 이번엔 시티 투어를 시작했다. 직접 그 구불구불한 골목을 걸으며 살펴본 스톤타운의 느낌은 숙소에 짐만 놓고 향신료 투어를 떠날 때 느꼈던 스톤타운의 첫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많은 문화가 오고 가는 교역의 중심지였던 역사와 많은 국가로부터의 식민지 경험이 녹아들어서인지 아프리카, 아랍, 유럽 문화가 군데군데 섞인 듯한 건물과 거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화려한 목재 대문이 눈에 특히 띄었는데 그 역시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어 그 화려함이 낡은 건물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무역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던 잔지바르에는 향신료 그리고 노예무역이 있었다. 잔지바르는 19세기까지도 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는 옛 노예시장 부지에 세워진 성공회교회와 팔리기 전까지 노예들이 지냈던 방을 둘러봤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20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 70~80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을 넣고 이틀 동안 음식은 물론 물도 주지 않았다. 살아남으면 강한 체력을 가진 노예임이 입증된 것이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높아져 비싼 값에 팔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떠 있었던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에 말이 없어졌다. 더운 날씨에 걷다가 지하공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시원함이 사라지고 벽에 달린 쇠사슬에서 나오는 냉기만 남았다.      


쇼핑과 야시장, 흐름을 원활하게

투어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 화장을 했다. 샤워 시설도 좋고, 다른 일정도 없고, 에어컨도 빵빵하니 쇼핑을 가기 전 정말 오랜만에 화장을 해보고 싶었다. 대체 언제 입을까 싶었던 원피스도 꺼내 입고 쇼핑하러 숙소를 나섰다. 잔지바르 골목 구석구석에는 구경만으로도 즐거울 만큼 화려하고 이국적인 물건들이 가득한 상점들이 많다. 귀걸이, 팔찌 같은 장신구는 물론, 그릇이나 악기, 그림, 목공예품 등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여행이 많이 남아있어 부피가 큰 것들은 아쉬웠지만 내려놓고 귀걸이와 팔찌만 각각 두 개씩 샀다.      


잔지바르는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지역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금식 기간, 즉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진 후에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야시장이 펼쳐진다. 특히 라마단이 끝난 날은 절제, 금욕의 기간인 라마단을 잘 마친 기념으로 매우 큰 야시장이 열린다. 그리고 운이 정말 좋았던 우리가 잔지바르에 간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맛있어 보이는 온갖 음식과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야시장에서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이거, 이거 그리고 이것도 주세요.” 라며 신나게 주문했다. “음식의 종류는 다양할수록, 일행은 많을수록 좋다.” 야시장과 관련한 나의 신념이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좋은 까닭은 질리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큼한 과일꼬치로 식욕을 돋우고 잔지바르식 고기피자로 현지의 맛을 느끼고, 매운 닭볶음으로 다시 침샘을 활성화한 다음 바나나와 초콜렛이 들어간 호떡 비슷한, 이름을 분명 들었지만 생각나지 않는 무언가로 디저트. 틈틈이 사탕수수 주스를 마셔 원활한 흐름을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 두 번째로 일행이 많을수록 좋은 까닭은 “나도 한 입만”만으로도 메뉴판에 있는 메뉴 중 상당수를 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일행은 나 포함 총 6명이었고, 우리는 6종류의 잔지바르식 피자를 먹었다. 토마토치즈피자, 스파이시치킨피자, 누텔라피자, 문어피자 등등.      


해변에서 다같이 라라라

야시장은 충분히 활기차고 즐거웠지만,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엔 뭔가 아쉬웠던 우리는 해변에 위치한 바(bar)로 향했다. 건물 내부는 스탠드바 형태로, 서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며 멋진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고,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건물 밖 해변 모래사장 위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바였다. 테이블에 앉아서 맨발로 시원한 모래를 꼼지락 거리다 보니 오늘 하루 각종 투어로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 발이 금방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몸이 편해지니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음악 소리를 따라 들어갔고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온몸에서 흥이 묻어져 나오는 그 밴드의 팬이 되었다. 바 내부는 평화로운 모래사장과는 다르게 신나는 비트의 노래가 나올 때면 처음 본 사람들끼리도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흥겨운 분위기였다. 신나는 몇 곡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이 이어졌다. 그때 너무 당황스럽게도 밴드 멤버 중 한 분이 내 손을 잡고 기타 쪽으로 이끄셨다. 공연 내내 내가 기타를 뚫어지게 본 게 티가 많이 났나.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를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어하는 소녀팬이라고 생각하신 건가. 나의 예상과 달리 그분은 기타를 나에게 쥐여 주시더니 나보고 공연을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기타를 치며 Lemon Tree를 불렀고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박수와 앙코르 요청을 받아 또 다른 노래를 기억나는 데까지만 얼른 치고 틀린 코드를 웃음으로 무마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무대에서 부를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 지금 이제야 와서 굳이 그 자신감의 원천을 찾아본다면 당시 아프리카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과 간만에 화장을 했다는 특별함이 아닐까. 어쩌다 한 번씩의 무모한 자신감은 어떤 종류의 웃음이든, 그 웃음과 함께 떠올릴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부지런한 친구가 내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테이블을 박차고 무대 앞으로 와 내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준 덕분에 나는 그 순간이 담긴 카메라를 들고 조금 부끄럽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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