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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실생활자 May 22. 2022

[세 번째 편지]"독특하고 기이하고 이상한 생명체"

k 선배에게 ③

k 선배에게,


어느새 계절은 신록이 점점 짙어져 일렁이고 햇살 따가운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나름으로 또 보기에 좋기도 합니다. 천지에 장미가 흐드러지고 경주 어디에는 금영화가 꽃물결을 이룬다는 소식에 엉덩이가 들썩이기도 합니다. 밭농사에, 나무 심기에, 카페와 모임 운영에, "허리가 휠" 선배에게 꽃 타령을 하려니 좀 열없기도 합니다만. 


지난번에 저는 "인간이 신뢰할 만한 존재인가" 하는 주제를 놓고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쌓이면 어떤 무늬가 새겨질까요. 이렇게 선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니 진주의 어느 밤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40여 년의 세월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그 깊은 공간 '다원'에서 맥주 한 병을 두고 우리는 수다를 떨었지요.   


선배는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생명체’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에서 거의 유일하게 반자연적인 존재로 어긋나 사는 인간이기에 항상 우리는 ‘자연’에 따라야 한다고 되뇌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잊지 않으려고요. "독특하고 기이하고 이상한 생명체가 우리 인간들"이라는 선배의 말은 일본의 학자 기시다 슈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이 지구 위에서 온갖 기괴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했지요. 


자연의 질서를 신뢰하고, 또 그 질서와 법칙에 순응하는 인간을 신뢰한다는 선배의 말은 참 단단하고 충만하게 들립니다. 그런 인간도, 그런 인간을 찾는 선배도 자연과 일체 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겠지요. 요즘 세상에서는 만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고 그 만남을 갈구하는 선배의 한탄은 마음을 좀 쓸쓸하게 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바람이라 우리는 모두 결코 그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고독할 것 같아서요.   


자연에서 어긋나며 너무나 반자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은 자연에서 튕겨져 나온 그 결여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그야말로 기괴하고, 기이한 짓들을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미친!!’이라는 격한 말이 절로 내뱉어지는 뉴스를 접하고 잠시 충격과 공포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최근에 벌어진 일도 아니었고 벌써 수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소에 구멍을 뚫고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계속 있도록 보조 장치를 씌어 위에서 소화가 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손도 넣어 볼 수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인 듯한 아이를 들어 올려 구멍이 뚫린 소의 위장 안으로 손을 넣어보게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구멍 뚫린 소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도 ‘문제없이’ 살 수 있고 소화 장애가 있으면 약도 바로 투여해 더 건강히(?) 살 수 있다는 설명에 진저리 쳐졌습니다. 그런 걸 자연 관찰이니 과학 견학이니 하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뚫어 놓은 구멍으로 카메라를 들이대 촬영하는 모습은 구역질과 함께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슬프게도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범해 보였고 그들의 눈빛은 신기한 듯 호기심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듯"이라거나 "호기심"이라거나 하는 것이 온전히 저만의 감정적인 추측이라 해도 그 장면을 보니 인간은 그냥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지구를 위한 길이라는 격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분노 그 너머, 애도와 비탄의 너머를 바라보는 선배처럼 보다 자연과 가까워지며 단단해져 가는 존재는 되지 못하고 너무 무책임하고 나태하게 외면해 버리는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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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작한 편지를 끝맺지 못하고 다시 잇고 있습니다. 우연히 본 기사 내용에 경악해 두서없었네요. 이전에 선배는 지금의 문명과 체제에 잘 적응해 성공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나 유명 인사보다 문명에 반대하는 무명의 아웃사이더들, 이름 없는 반항아들을 더 신뢰한다는 소신을 말하며 저의 견해를 물으셨지요. 


‘신뢰’라는 말은 좀 버겁고, 저 또한 심정적으로 좀 더 편하게 대해지는 사람들은 지금의 문명에 반대하고, 투쟁하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아보는 눈은 아직 못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명과 체제에 잘 적응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시기심’은 아닌지, 무명의 반항아를 대하는 편안한 마음이 ‘심리적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아닌지 간혹 저 자신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원하죠. 그 마음이 시기심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이기를, 비겁한 안도나 두려움이 아니라 지지와 진정한 신뢰이기를 말입니다. 


어쨌건, 지금의 이 문명과 체제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니 반대하고 투쟁하고 소리쳐 외치는 사람이 더 정상적일 확률이 높고 그래서 더 지지할 것 같기는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저는 좀 자연의 법칙을 오롯이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립니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으니 만화 <개구장이 스머프>의 투덜이 스머프처럼 투덜대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연 안에서 가득 채워진 느낌이 든다면 지금의 생각과는 또 좀 달라질까요. 계절은 순환하고, 과일나무는 꽃피우고 열매 맺고, 나무는 하루하루 자란다는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를 잊지 않게 되면 변하지 않는 믿음에 익숙해질까 궁금합니다.


다음 주에는 비 소식이 있습니다. 선배가 반가워하는 비였으면 좋겠습니다. 

유월의 만남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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