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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15. 2021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세요?

누군가 남편에게 물으면 그는 뭐라고 말할까


한날 남편이 비슷한 연배의 직장인들과 넷이서 식당에 둘러앉아 직장생활의 고달픔과 함께 인생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모두에게 물었다..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세요?”

“….”

“….”

“나는 아직 많이 사랑하는데…”


아내를 사랑한다는  당연한 말에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며 마음이 설레었다. 그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초현실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마음은  초이상을 품으며 언제라도 사랑을 꿈꿨고  연애하듯 사랑하며 살고 싶어 아낌없이 그에게 표현했다. 그러면 그는  “나도~” 이렇게 짧게 답하곤 했다. 그런 식이었다. 좋거나 나쁘거나 어떤 감정이든 솔직하게 자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내가 사랑을 외치면  본인도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 그래도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직장동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게  줄은 몰랐다.


[어과장님만 아직도 와이프를 많이 사랑한다고 하더라. 부럽다잉.]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언니가 톡을 보내서 알게 되었다. 본래 우리 부부를 잘 아는 사이인데 남편과 다른 회사에서 일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넷이서 직장 선배로서는 처음으로 함께 하는 자리였다.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로 넓고 깊은 대화를 했던 것 같고 그 속에서 그녀는 평소 아이 아빠로 알던 남편을 달리 느끼게 된 듯했다. 우선 남편을 근사하고 멋진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에서 아내로서 행복하고 기뻤다.


[가정의 행복이 일 순위라는 생각에 기반한 분명한 라이프스타일이 보이는 과장님이 멋지더라. 우리 상사였으면 좋겠어.]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작은 아이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해안도로를 걷고 있었다.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원 앞에서 전화를 하니까 그 옆에 맥주 가게라며, 같이 집에 가자고 그곳 앞으로 오라고 했다.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좀 안아주면 좋겠어서 그리 가니 빨개진 남편이 보였다. 인사를 드리고 남편은 아이를 업고 그렇게 걸어서 우리는 집으로 갔다. 집에 오니 남편의 2벌뿐인 여름 유니폼이 세탁기에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나가기 전에 내가 나중에 와서 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기에 그대로 두었는데 남편이 내게 물었다.


“이거 안 돌렸나?”

“응….”

“아, 나가기 전 에랑 다른데, 갑자기 빨래가 왜 이렇게 많이 생겼노?”

“애들 옷 벗고 샤워해서 그렇지.”

남편은 구시렁거리면서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씻고 오더니 그새 드르렁 코를 골면서 잠에 들었다. 나는 주방에서 남은 설거지와 정리에 한창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톡창을 열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대화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술 먹고 와서 바로 잔다고 한 귀로 흘릴 잔소리를 쏟아내면서 집안일을 했을 텐데 나는 조용히 마무리하였다. 글을 쓰다가 지난 결혼기념일이 생각났다. 그때 돌이킬 수 없는 9년 차 남편에게서 ‘마이 데스티니’를 느꼈었다.



오늘은 수업이 비교적 작은 날이라 출근하자마자 처리할 것들을 리스트업 해서 정리했지만 별로 한 것은 없고 업무 외의 일로 집중력과 에너지를 소진한 채 퇴근하고 나왔다. 시간은 여섯 시를 향하고 있었다. 점심 후 공복이 너무 길었다. 아침부터 달콤한 탄수화물이 간절했다. 케이크나 마카롱, 도넛이나 크로플이 아닌 구움 과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갈증, 겪어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우회전 지점을 지나 그대로 직진했다. 통화버튼을 꾸욱 눌렀다.


“오빠, 어디야? 배 괜찮나?”

“안 괜찮고, 조금 있다가 갈라고…”

“나 지금 나왔는데 만석당에 가서 구움 과자 좀 사갈게.”

“응? 니 지금 만석당에 간다고? 은희 가게??”

“어. 왜? 가면 안되나?”

“아.. 아니고 집에 롤케이크 있는데… 그래도 먹고 싶으면 사라.”

“오케이, 오빠 나 순대가 먹고 싶다. 올 때 사 와줘.”

“가는 길에 중앙 시장 들러서 사가께. 그런데 니 만석당 갈 거면 내가 주문해 놓은 게 있는데 그냥 네가 찾아온나. 가 보면 안다.”

“뭐? 케이크? 오빠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크크크”

“은희 가게니까 전화했지.”


그렇다. 9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오빠 친구의 친구가 새로 시작한 스튜디오에서 웨딩촬영을 했고 오빠 아는 지인이 소개해 준 예식장을 골랐으며 결혼식 뒤풀이는 친구의 해물탕집에서 했다. 오빠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곧 결혼한다는 이야기 끝에 그 누님을 통해 궁합을 봤고 오빠 직장 앞에 있는 낡은 여행사에 가서 신혼여행지를 골랐으며 아이들 이름은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전무님께서 지어주셨다. 그랬다. 오빠의 인생에서 무언가 신중한 선택을 할 때에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가 아주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직 직장동료의 디저트 가게 오픈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예쁜 케이크를 기념일에 받을 수 있었을까?



아무튼 오늘 ‘만석당’에서 우리가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어가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나의 데스티니였다.


먹고 싶은 구움 과자 잔뜩 고르고 오빠가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오며 계산은 전부 남편이 한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사장님의 인사말이 아주 듣기 좋았다.


“우아, 어 과장님 알고 보니 스윗남이네요.”


결혼 10년 차에 남편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직도 당당하게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스윗남이었고 큰 아이는 그의 많은 면을 닮아있었다. 어릴 때는 ‘부부끼리 사랑하면서 사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세상에 그런 당연함은 없었다. 진짜 사랑했는데 한참 싸웠고 힘들었고 이제는 편안하다. 서로에 대한 인정에 기반한 평온과 이따금 느끼는 사랑, 나는 늘 이 사랑의 감정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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