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쓰려던 것은 아닌데 쓰다 보니 나의 책 이야기
부끄러운 고백부터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고 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독후감이나 수행평가와 같은 필요에 의해 가끔 책을 보기는 했으나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마도 교과서였을 겁니다. 여고시절 유행했던 귀여니의 웹소설에 살짝 빠지려던 찰나 드라마와 영화 같은 영상은 훨씬 편안하길래 더 즐겨 보게 되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과의 적당한 거리두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랬던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생에 가장 치열한 30대를 보내며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다양한 역할로 살아나가면서 여러 좌절과 실패와 내 힘으로 도무지 되지 않는 벽을 만났습니다. 늘 사람이 좋았던 제가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지극히 고독하고 혼자이고 싶어 졌습니다. 여러 오롯한 나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뼛속 깊이 느끼면서 같은 공간에 있으나 다른 세계로 넘나들 수 있는 책을 찾은 것 같아요. 나를 둘러싼 좁고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책을 읽을 때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구절에 위로를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맬 때 방법을 찾고, 책에 담긴 지식으로 조금씩 부족한 나의 앎을 채워가면서 행복했습니다. 그 첫 시작은 동생이 읽다가 쌓아둔 히가시고 게이고의 《가면 산장 살인사건》과 《나비야 잡화점의 기적》이었습니다. 소설의 특성상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몰입의 흐름을 잃기 싫어서 밤새 책을 잡고 있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다양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 갑작스러운 반전에 그렇게 무릎을 쳐가며 재밌게 읽었는데 왜 머릿속에는 정말 재미있었다는 감정만 남고 주인공 이름과 스토리의 전개나 기막힌 표현 같은 것은 왜 어렴풋한 기억으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제게 독서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미스터리 소설이었다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서 시작된 저의 책에 대한 관심은 곧 역사 소설로 넓혀졌습니다. 새 학기에 흥선대원군부터 시작인 근현대사 수업을 앞두고 김은숙 작가의 극본을 소설로 쓴 김수연의 《미스터 선샤인》을 읽었습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과 풍경을 상상하고 가슴 떨고 읽었던 글을 드라마로 다시 보았습니다. 글로 읽으며 상상했던 것을 상상 이상의 영상으로 마주하며, 역사가 삶에 던지는 의미를 곱씹게 되었습니다. 김영하의 《검은 꽃》과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 한강의 《소년이 온다》, 권비영의 《덕혜옹주》,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소설을 읽으면 눈앞에 선명하게 그 역사가 펼쳐지는 것 같아 한참을 빠져 읽지만 읽고 나면 결국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역사는 삶이라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완벽한 해설서로 여기며 인생에서 만나는 난관과 선택의 기로에서 늘 역사를 떠올이며 답을 찾는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는 제가 아이들에게 그러한 역사를 가르치는 태도와 방식에 큰 울림을 주기도 했습니다. 학년말에 다양한 수업 활동에서 빛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참여해 준 학생들에게 줄 선물로 이 책을 구입해서 간단히 편지와 함께 역사의 쓸모를 건넸습니다. 다양한 교과를 가르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독서 모임에서도 그 의미를 함께 풀어 보았습니다. 특히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임시정부를 찾아 상하이를 다녀온 후 더 깊은 고민을 하게 한 것은 바로 이 책에서 이회영 선생님을 떠올리며 저자가 물었던 삶의 태도였습니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진도와 시간에 쫓겨 늘 바쁘게 진행되는 수업에서 교사로서 가르쳐 주고 싶은 것들과 의욕이 넘쳤나 봅니다.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교사로서 나는 어떤 수업을 만들어 가야 할지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그 끝에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역사를 도구로 하여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그리하여 지식을 넘어 그 내면 스스로가 지혜에 이르게 하는 것, 그것이 교사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쉬운 것은 아니고 그리 생각했다 하여 바로 그렇게 구현될 것이라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늘 이러한 마음을 품고 교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또 오노 마사토의 《실패 도감》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녹아 있는 것도 같았거든요. 학생들에게는 제가 어쩌면 완벽해 보일 수도 있는 선생님이지만 사실 저의 매일은 다양한 도전 속 숱한 실패로 가득했습니다. 초반의 의욕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는 실패나 포기의 상황은 늘 유쾌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위인들의 실패 이야기를 읽으며 독에서 면역 체계가 생겨나듯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들 위인들의 성공에 모두가 주목할 때 우리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점은 그들의 실패입니다. 1,000번의 실패가 없었다면 한 번의 큰 성공도 없기에 우리는 좋아하는 한 가지를 오래 계속해야 하고, ‘그게 뭐 어때서?’라는 마인드를 갖고, 하루하루 어제의 자신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만나고 삶을 즐겁게 사는 요령으로 감히 책을 읽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실패를 용서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성장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실패할 용기를 가지라고 알려주고 싶어 졌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해 보니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내가 가진 힘으로 최선을 다해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합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의 상황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단연 ‘변화’였습니다. 언택트를 중심으로 한 급격한 사회 변화가 교육계에도 불어닥쳤고 우리는 지금도 그 중심에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교육 관련 책에선가 보았던 ‘변화는 유일한 상수다.’라는 문장을 저는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읽었던 다양한 책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 시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으로 인간만이 갖는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에 주목하라 알려준 이지성의 《에이트》는 독서와 사색과 성찰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존 카우치와 제이슨 타운의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는 원격 수업이 뉴노멀이 되는 시대에 학습자 스스로의 선택을 더 현실성 있게 만들고, 숱한 실패로부터 배우고 열정적 끈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 방법의 최적 지점을 찾도록 도와야 함을 느꼈습니다. 수업 중 확장 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맥락 전문가로 거듭나야겠다는 다짐도 이어졌습니다. (다짐일 뿐이지만요) 윤지영 선생님께서 쓰신 《상상하는 수업 구글 클래스룸》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클릭해보며 원격 수업에 적응해가던 날이 떠오릅니다.
끝으로 교사는 나 스스로를 바르게 하여야 하고, 그 누구를 변화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어야 하고, 내가 넓어져야 하고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비단 교사가 아닌 그 누구라도 해당되는 인생의 큰 깨달음과 삶의 태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 처음을 함께 열어준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해 준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였습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고, 우리가 변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순간에 있는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마주하는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알게 되어 지금 여기에 주목하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이나 《마흔에게》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러 심리학의 격려 사례집이었던 이해중 선생님 외 공저인 《격려하는 선생님》을 통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평온으로 가는 길에는 ‘격려’만 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소박한 집밥 같은 치유로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다시 느꼈습니다.
공감과 격려라니, 모든 것을 다 포용할 것 같았지만 삶은 그렇게 책을 읽었다고 하여 바로 바뀌거나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을 아니었습니다. 타인과 마주하는 학교에서는 비교적 그 실천이 어렵지 않았으나 감정적, 육체적, 혈연적 고리가 더 깊은 가족들 간에는 그것이 마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남편은 가장 가깝고도 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펼쳐 든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는 계속 페이지가 넘겨지지 않고 반발심이 커졌는데, 그때 스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다양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적당한 모든 것이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그늘을 드리우고 좋은 맛과 향을 더한다는 적당함의 미학을 읽고 가까운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서운함을 주고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라는 구절로 이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의 근원을 깨닫게 한 글배우님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로 충분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며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알려준 하오린의 《하버드 강의 노트》는 성공 심리학과 행복학, 화술학, 사교학, 감성학 등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책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 이 시간을 최고로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과 성취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가장 밀도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을 자신의 카이로스(kairos:누구에게나 주어진 물리적 시간 외에 존재하는 어떤 운명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라고 알려준 유대열의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고민하게 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더 많은 확보하기 위해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꿈꾸게 했습니다.
누군가 책 읽기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참가하게 된 출판사 모니터링단의 <선생님의 서재를 소개해주세요>라는 작은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빈 문서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한 서너 권의 책만 쓰려던 것이 이렇게 장황하고 정신없는 긴 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쓰려던 글이 아닌데 계속 키보드는 바쁩니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제가 스스로를 위해 읽기 시작한 것이 생활의 일부에서 생활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저는 모나지 않게 둥그렇고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지요. 책 또한 펼쳐 드는 빈도가 잦아지니 감사한 인생의 지혜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계속 제 시간을 내어 책을 펼쳐 읽고자 합니다. 공강시간에 저는 책에 대한 글을 쓰고 퇴근 전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의 다음 책을 정했으며, 오늘 밤에는 대학 동기들과 비대면으로 마주하고 김민식 작가님의《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책이 있어 오늘 하루 또한 풍성해졌네요. 오늘도 참 책 읽기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