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의미와 고독의 힘
이번 여름에 흠뻑 빠져 있던 소설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었다. 지금껏 꽤 여러 번의 독서 모임을 했고 많은 것들을 나누었는데 정작 기록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그런 찝찝함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몰입해서 읽었던 책을 떠올려 습지의 '카야'를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읽었던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에 등장하는 유나 딸 '지유'가 떠올랐고 또 그 시기 정주행 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떠올랐다. 버림받고 외롭고 상처 받은 어린 여자들. 카야에게는 테이트가 있었고, 지안에게는 아저씨 동훈이 있었다. 지유에게는 누가 있을까? 아무튼 나는 다시 4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펼쳤고 울림을 준 문장과 시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남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과연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빛을 내고 어떤 풍경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와 늪은 가 본 적도 호기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나무들이 어찌나 무성한지 햇살도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걸려 탐스럽게 핀 연령초와 흰 바이올렛꽃 무덤을 비추었다.’와 같이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을 바탕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 고요한 곳, 그곳에 홀로 선 카야가 성장하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면서 의식의 한 축은 1969년 체이스 사망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카야는 언니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다섯 아이 중 막내였다. 아빠는 전쟁에 참전하여 왼쪽 허벅다리에 파편을 맞고 난 후 폐인으로 전락했고 주폭에 시달리던 엄마는 견디다 못해 떠났다. 언니 오빠들도 하나둘 떠나고 난 후 한 번씩 자취를 감추다가 돌아오곤 했던 아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떠나버렸다. 습지에 고립된 글도 모르는 6살 어린 여자아이 카야,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6살 아이는 바람에 낯선 소리가 섞이면 인기척을 찾아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아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느낀다. 외로움을 아는 것은 달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언어가 없는 야생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습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카야는 ‘늪쓰레기, 습지 암탉, 늪시궁쥐’로 불리기 일쑤였고 ‘마시 걸, 늑대의 아이’로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한 외로운 카야에게 친절로 다가온 건 세상의 또 다른 차별과 서러움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흑인 점핑과 메이블 그리고 테이트뿐이었다. 무엇에 의해서이건 ‘고립’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외로움’을 동반했다.
소설에서 홀로 성장해가는 카야만큼이나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테이트였다. 그는 체이스와 달리 진심으로 그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다.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차 카야를 이용하는 체이스는 결국 카야의 두 손에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책을 전해준 테이트는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선사했다. 그녀와의 사랑보다 자신의 미래를 찾아 떠났던 그는 자신의 잘못에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다. 야생의 카야가 가진 학술적 지식과 심미적 능력을 알아보고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와 그녀가 세상에 한 발짝 나올 수 있게 하였다. 세상에 드글거리는 ‘체이스들’ 속에서 따뜻하고 선한 영향을 주는 유일한 존재인 테이트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시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셨다. 바로 스커퍼. 새우를 잡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과 만나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햄버거를 준비해 먹는다. 그러고는 아들에게 시를 읊으며 인생을 가르쳐 준다.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그리고 시의 존재 의미는 사람한테 뭔가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후 테이트는 토머스 무어의 시 한 편을 읽다가 카야를 떠올리고 무언가 느낀다. 나는 소설 중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그를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게 한 것은 곧 시였다. 카야 또한 이후 끊임없이 시를 썼다.
이 소설은 야생에서의 고독이 한 인간을 어떻게 나아가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 안에서 카야는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존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 카야는 긴 시간 동안 온몸으로 외로움과 두려움, 고독을 느꼈으나 견뎠고 자랐다. 결국에는 습지를 지키는 보호자이자 전문가가 되었다. 테이트의 말처럼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 준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알았다. 카야의 어머니인 습지는 그런 그녀를 돕고 감춰주고 결국에는 품어주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결국엔 그녀였다.
‘저 애들은 깔깔 웃고, 나는 농게처럼 구멍을 파고 숨고’라는 문장에서 내가 외면했던 곁에 있는 수많은 농게들이 떠올랐다. 테이트를 동경하면서 나 또한 체이스였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카야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결핍과 지독한 고독을 품어준 것은 자연,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외로움은 결국 사람의 사랑만이 채워줄 수 있었다.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는 자연과 인간과 고독과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는 늘 시가 함께였다. 카야처럼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한 것이리라. 나 역시 그들처럼 자연에서 시의 의미를 찾아 무언가 느끼고, 고독에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가장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