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도쿄의 정원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다

SLOW and STEADY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연을 만난다 


도쿄의 정원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다

당분간은 혼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거창하게 1인 기업가가 되겠다는 포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루를 느리게 그리고 적게 일해야만 하는 나의 건강이 다른 사람의 속도와 일의 양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유기농업을 배우면서 자연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은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쁨을 느끼는 농사의 방식은 분명 다른 사람과는 달랐고,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이 드는 날들이 점차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서 원예가로 활동하는 선생님께서 본인이 일하는 현장을 보면서 고민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그렇게 2014년 봄, 오랜만에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선생님의 안내 덕분에 평소 일본을 여행할 때보다 깊이 있게 일본의 정원문화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방식은 사뭇 다른 지점들이 있다. 


서양 문화 특히, 영국의 문화를 일찍부터 많이 받아들인 일본은 개인 주택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서 돌보는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대중적인 정원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면 바로 홈센터 일 것이다. 


홈센터 즉 집을 꾸미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이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원예(가드닝)을 위한 다양한 자재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해외 종자회사의 다양한 씨앗부터 꽃과 텃밭 모종,  흙, 화분, 벽돌, 농기구 등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재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곳에 있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구경하게 된다.  


정원으로부터 자유로운 가드너


선생님은 홈센터에서 가드닝을 위한 상담을 하는 등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정원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도쿄 시내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의뢰인과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의뢰인은 개인일 때도 있고 학교, 지역사회 또는 기업인 경우도 있었다.


선생님을 따라 방문했던 현장 중, 나에게 뜻깊은 경험을 선사한 곳은 어느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는 옥상정원이다. 


그 정원은 기업이 위치한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꾸려지고 있었는데, 그분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과 함께 정원에 물도 주고, 가지치기도 하고, 정원 바닥에 떨어진 꽃잎과 쓰레기들을 청소하면서 정원을 정돈하는 일을 하였다.  


사실 그때 나는 한국에 있는 농장에서 생긴 일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마음에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특히나 너무나도 무력해진 나의 몸 - 쉽게 피로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양의 일을 처리해 내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무력감, 박탈감, 슬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눈 앞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물기를 머금고 시원한 향을 내뿜고 있는 흙내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표정이 어두운 것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 자기 몫의 일을 아주 천천히 잘 하고 있었다. 특별히 느리다고 조바심을 내는 기색도 없었고, 남의 일을 더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나보다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슬펐고, 일본에서는 나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도 슬펐으니 이제는 어디에서도 슬퍼하지 않고 살아갈 길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가야만 했다. 


'이제 나는 나의 몸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픈 나도 괜찮다.'

'많이 오래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아픈 나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픈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야

일본에서 찾아뵈었던 한 어른이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생강 씨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알고 있어요?"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고,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사실 그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나가셨다. 


"앞으로 농업을 통해 어떤 일을 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아픈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아요. 그건 게으르고 나약해서가 아니에요. 만약 생강 씨가 아픈 자기 자신에 대해서 게으르고 나약하다고 느낀다면, 다른 아픈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낄 거예요."


나는 선생님 앞에서 그 먼 일본까지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성실한 마음이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던 나에게 성실함을 증명할 건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관대했지만 마음속으로 상당히 엄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느리고 약한 것에 대한 너그러움. 


세상에는 느리고 약한 나를 받아주는 자연이 있고, 나는 그런 작은 기쁨을 천천히 나누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어렴풋이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은 죄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