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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즐거움

혼자 조용히 느릿느릿 서투르게 하는 가드닝  

북촌 원서동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 이랑에서 작은 정원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이제 횟수로는 2년째이다. 


이랑의 사장님과는 일한 시기가 겹치지는 않으나, 한 직장에서 근무했던 인연이 지금은 가드너로서 이어지게 되었다. 


이랑은 한옥으로 된 게스트하우스이다. 주로 독채를 원하는 손님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집 앞에는 손님들이 툇마루에 앉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딸려 있다. 정원 한 가운데에는 이제는 제법 키가 큰 버드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봄이 되면 부드러운 분홍색 꽃이 활짝 핀다.


이제는 키가 많이 자란 버드나무의 가지가지가 담장을 넘어서 손을 밖으로 휘익하고 뻗치고 있는데, 그래서 올해 첫 가드닝 작업은 가지치기로 시작되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는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의 가드너 메리 씨의 책 <The Garden Awakening>을 통해서 나는 인간이 자연의 조력자로서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좀 더 강하게 생겨났다. 꼭 자연보호 운동 뿐만이 아니라 도심에서 가드너(정원사)로 일하는 것 역시 자연을 지키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마음에 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마음으로 나무에게 허락을 구하고 조심스럽게 가지치기를 시작. 


제법 만개한 꽃들을 보면서 그래도 활짝 꽃이 펴본 다음에 가지치기를 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지치기된 꽃 달린 나뭇가지는 바로 근처에 사는 친구의 집 꽃병(같은 술병?)에 다소곳하게 꽂히는 것으로.  

그리고 이제는 화분에 새로운 흙을 담아줄 때다. 

흙을 덜어내고 화분을 씻어 내다보면 "이제 정말로 2017년 새해의 봄이구나"라는 실감이 든다.


새 술은 새 포대라는 말이 있듯이, 가득했던 것을 비워내고 씻어내고, 작고 여린 모종들을 심어준다. 


이랑은 작은 정원은 토심(흙의 깊이)이 얕은 편이다. 손님들이 머물다가는 게스트하우스라는 특성상,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 때 덮개를 씌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올해는 텃밭 작물은 다 화분에 심기로 하였다. 


상추, 적상추, 치커리, 레몬밤, 파를 심어보았다. 

마침 이날은 폴란드에서 가족 손님이 오셨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살던 분들인데, 아이들도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매운 라면을 좋아하는지 몇 봉지를 사 왔더라. (한국인 입맛을 아는구나!)


가족 중 어머니인 여성분께서, 자신도 폴란드에서 허브를 키우고 있다면서 함께 심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걸어오셨다. 이런 깜짝 선물 같은 해프닝은 가드닝 작업을 할 때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조금 더 열어준다.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거나, 때로는 겁먹고 닫혀버리는 내 마음에


"가드닝을 통해서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또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감정과 경험은 바로 이런 거였지?"

하고 속삭이고는 가볍게 떠나버리는 우연의 해프닝


이 감정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내 마음에 끼어있는 찌뿌둥한 감정도 화분을 씻을 때 같이 싹~하고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감자와 바질을 더 심을 예정이고, 사장님과 상의하여 다른 식물들도 더 심어 보면 어떨까 한다.  

바질 씨앗 뿌리는 일정이 좀 늦어졌다. 감자는 싹이 좀 덜 났다. 늦어져도 좀 어떠하랴. 


함께 하는 것이 참 좋으면서도, 혼자 조용히 느릿느릿 서투르게 하는 시간 또한 너무나도 좋다. 


'나에게는 혼자 하는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했구나.'


내 마음속 욕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곧 정원에서 자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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