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두고 정공법이라고 부르는 걸까.
'인생은 어떤 것이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글은 참 많지만, 내 선호를 반영해서 한 번 더 해보겠다.
적어도 지속적인 자기 발전을 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은 경우의 수를 수집해 나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무슨 메마르고, 건조하고, 이성에 지나치게 취해버린 말이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신경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부터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무언가 새로운 자극에 대해 그것을 '받아들여 내거나', '저장해 두기' 위해, 또는 필요한 상황에서 '다시 불러내기 위해서' 신경 세포들은 서로를 새로운 모양으로 연결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낸다. 용써 만들어낸 시냅스는 길과 같다. 한 번 닦인 길은 다시 지나기 어렵지 않다. 관리도 수월하다. 그리고 그 길은 교차로와 샛길처럼 가지를 치고, 얽혀나간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자극이라는 계기를 통해 작용한다. 여기서 자극이란, 보고 듣는 견문, 오감, 새로운 의문, 그에 이어지는 생각들의 확장 등의 무언가 조금이라도 기존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많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길'을 머릿속에 만들어 나가며 성장하고, 생각이 깊어지며, 시야가 넓어진다.
256가지의 생각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사람은 1천 6백만 가지(32비트)의 생각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치자. 256가지의 색을 구분하는 사람은 1천 6백만의 사나이가 설파하는 '거무죽죽한 갈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분홍'인 색에 대한 예찬을 듣고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갈색이라는거냐?" 다시 설명하면, "분홍색이라는거냐?"라고 되물을 수 있다. 자신이 닦아둔 길에 따라서. 32비트 사나이는 256 남이 뭘 연상하며 자신의 설명을 들었기에 그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얽힌 길이 더 많으니까. 완벽히 같은 길을 닦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만들어 둔 촘촘히 얽힌 인터체인지를 돌면서 256남이 갖고 있는 경험 구조를 더 높은 정확도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무언가에 대한 판단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 하지만 의문이 들 것이다. 개? 윷? 왼쪽과 오른쪽 사이의 길을 쪼개어 나간다. 정을 치듯이, 얇은 칼로 단단한 청포묵을 각지게 잘라내듯이. 한 번 든 생각의 실마리를 붙잡고 새로운 자극, 정보를 붙여나가다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의 사이에 희미한 빛이 보이게 되고, 자신이 활용 가능한 추상적 개념들로 그 길을 규정해 나가게 된다. 이것이 가치관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동시에 사고가 정교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단 지식과 호오를 떠나서도,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행동 가능한 경우의 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선택하게 해주는 경우의 수 등 우리가 접하는 많은 것들이 새로운 길을 닦을 터를 제공한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를 수집해 나가는 것이 지금의 시간을 보내는 가장 큰 의미이자,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똑똑해지고 싶었고, 올바르고 첨예한 가치관을 가지고 싶었으며, 모든 상황에서 여유롭게 맞는 행동을 늦지 않게 골라 할 수 있길 원했다. 동시에, 난 게으르다. 에너지 낭비를 참 싫어한다. 그래서 한 번 길을 닦을 기회가 생기면 힘을 좀 들여 닦아두고, 나중에 편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쌓이고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정말 똑부러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내 머리 사용법을 익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