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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han Mar 21. 2016

Westone UMpro30

거나하게 투자해본 내 음악 취미의 상징



제가 두 달 전에 새 것 같은 중고로 산 Westone UMpro30은 밸런스드아마츄어 유닛을 한 쪽당 세 개를 넣어 만든, 스테이지 모니터링 용도의 커널형 이어폰입니다.


어렵죠? 잠시 소개를 해봅니다.


-Westone은 회사명으로, 웨스톤이라고 읽습니다. 미국의 이어폰 제조사예요.

오래됐습니다. 역사가 깊어요.

수공업으로 섬세하게 제작하기로 이름높습니다. 기기가 내는 음향 철학도 일관되어 있기로 유명하지요.


-UMpro30은 모델명이고, 프로 뮤지션들을 위한 라인이라는 뜻에 밸런스드아마츄어(BA)를 한 쪽에 세 개씩 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스테이지 모니터링 용도의 커널형 이어폰이란?

무대 위는 공연 소음으로 인해 매우 시끄럽습니다. 따라서 공연자가 자신과 동료들이 내는 소리를 정확히 듣기가 힘들죠.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 스테이지 모니터링 이어폰입니다. 커널형이란 귓구멍에 이어폰에서 소리가 나오는 끝 부분이 삽입되도록 착용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요즘 나오는 삼성 번들 이어폰도 커널형이에요.

뛰어난 차음성으로 소리를 손실없이 귓구멍에 전달해줍니다.


이 스테이지 모니터링 용도의 이어폰은 큰 음량으로 오랜 시간 들어야하는 연주자의 귀를 보호하기 위해, 소리의 초고역 부분을 뭉툭하게 다듬곤 합니다. 이 UMpro30도 그렇고, 다른 유명한 스테이지 모니터링 이어폰인 Shure사의 SE시리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음악 감상용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만일 LG 스마트폰의 번들 이어폰인 쿼드비트3 등을 사용하다 이 제품을 들으시면, 물에 잠겨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드실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차이가 있어요.


Q: 그래서, 왜 샀나?


저는 밴드 생활을 조금 맛보긴 했지만, 자주 공연하는 실력자도 아니고, 비싼 무선 송수신 장치도 구비하지 않았으며, 사운드에 민감하지도 않은 날림성 연주자였습니다...만...

A: 스테이지 모니터링 인이어라니, 엄청 갖고 싶지 않나요?

...네, 그래서 샀습니다...

하지만 물론 꼭 그 로망만을 위해서 산 것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1) 편안한 음색, 뛰어난 착용감

Westone의 제품들은 탁하거나, 따뜻한 음색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제품 성향으로 일관된 철학을 고집해왔습니다. 스테이지 모니터링 제품뿐만 아니라, 음악 감상을 위한 라인도 같은 철학으로 중저음이 강조된 이어폰들을 만들어왔죠.


저는 음악을 매우 많이 듣습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며, 습관이고,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웃도어에서 말이에요. 통학거리가 길어 이동하는 시간이 매일 3시간 이상입니다.

그래서 조용한 공간에서 들을 때보다 큰 음량으로, 오래 듣곤 합니다. 귀 건강에 치명적인 환경입니다. 이에 더해 밴드 생활을 하다보니,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 버금가는 소음에 자주 노출되어, 이미 가는 귀가 먹은 상태입니다. 흑흑... 젊은 나이에...


그래서 오래 들어도 귀가 쉽게 피곤해지지 않는 음색과, 편안한 착용감을 지닌 이어폰을 원했습니다.

이전에 쓰던 이어폰은 Phonak 012 모델에 그레이 필터를 끼운 것이었는데, 소리가 워낙 청명하고 고음이 강조된 소리를 내다보니 귀가 쉽게 피곤해지더라구요. 입소문난 명기였는데 눈물을 머금고 방출했습니다.

그 후 들여온 UMpro30은 이 점에서 매우 흡족했습니다.

오래 들어도 고막이 찡한 느낌이 없는 따뜻한 음색이 듣기에 아주 편안했습니다.

더불어 귓바퀴에 쏙 들어가는 훌륭한 착용감과 차음성, 유연하고 가느다란 동시에 질긴 케이블이 주는 아웃도어에서의 편리함도 만족스럽습니다. 상술했듯 밖에서 많이 들으니까요! (대신 로드킬의 위험은 상승)


2) 자주 듣는 장르와의 매칭

앞서 탁하게 들릴 수도, 또는 따뜻하게 들릴 수도 있는 UMpro30의 음색은 의외로 락과 메탈에 잘 어울립니다. 초고역을 커팅한 소리지만, 이퀄라이저로 중고역을 살려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락머신으로 유명한 전작 UM3X의 타격감을 일부 물려받아 듣기에 재밌는 소리를 내줍니다.


UMpro30은 웨스톤이 고집하는 '막이 낀 듯한 어두운 소리'를 많이 버리고 고역을 살린 편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스테이지 모니터링답게 보컬이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서도 저, 중, 고음을 귀에 잘 때려박아준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맞는 이퀄라이징을 찾으면, 음악 감상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을 찾기가 힘듭니다. 뒤에 또 적겠지만, 각 악기 소리를 잘 분리해서 들려주는 면모도 락을 포함한 재즈, 팝에 잘 어울립니다.


3) 악기 연주자로서의 음악 감상

위에 적었듯, UMpro30은 각각의 악기 소리들을 정확하게 분리해서 정확한 위치로 들려줍니다. 너무 넓거나 좁지 않게, 뭉치지 않게 말이에요. 이것은 여러 개의 BA를 사용한 이어폰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소리를 내는 듀서를 여러 개 사용하면, 입체적 표현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죠. UMpro30은 이 세 개의 듀서에 저, 중, 고음 하나씩을 배당하여 3-way 회로를 통해 소리들을 뿌려줍니다.

그래서 이 이어폰으로 가만히 음악을 들으면, 악기가 맺히는 정위감을 느끼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입니다.

부심은 아니지만, 악기를 여러 개 다뤄본 저는 악기를 하나씩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 목적에 적합한 음 분리도를 지녔습니다.


드럼은 적당히 가까운 곳에서 중심을 잡고 비트를 박아주는데, 크래쉬 심벌을 치면 저 뒤에서 공간감을 형성하며 촤앙- 하고 퍼집니다. 베이스는 아주 살짝 뒤로 물러나 아래에서 받쳐줍니다. 단순히 좌우만 느껴지는게 아니라, 정말로 아래에서 음과 리듬의 기초를 유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보컬은 부담스럽지 않은 한에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와서 악기에 묻히지 않게 속삭입니다. 배킹으로 깔리는 신디사이저, 코드 반주 들은 조금 더 먼 거리에서 중간점을 차지하고 잘 묻어납니다. 그러다가 포인트가 되는 음이나, 악상 전환을 위한 효과들이 신호를 보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스테레오를 정확히 표현하며 가까이 밀어넣어줍니다. 재밌겠죠?


재즈를 들으면 더블베이스의 현의 울림과 주자의 피킹 터치에 따라 음압과 소리가 저에게 전달되는 공간이 느껴집니다. 댄스 뮤직도 귀 안쪽에 틈새 없이 구겨넣는 음들의 양감에 귀가 즐겁습니다. 발라드도 보컬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려주는 듯, 앞에 나서서 잘 들려줍니다. 코러스가 분리되어 명확히 들립니다. 사고 싶죠?


4) 해상력

UMpro30을 처음 들으면 다소 텁텁하게 느껴지는 소리에 해상력이 좋은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역-초고역의 청량한 질감과 치찰음에 익숙했던 지난 날의 감상 포인트를 잠시 넣어두고, 악기의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가만히 들어보면 이 모델의 해상력은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 기본 이상이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악기가 갖는 물리적인 마찰 또는 타격에 의한 소리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표현해주거든요. 그저 계란막 같은 보호막으로 싸여져 있는 느낌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트오디오 20밴드 이퀄라이저를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역-중저역을 1에서 3 정도 커트하고, 5k 주위를 3~6정도 부스트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음의 텁텁함이 조금 사라지고 중고역이 말끔해집니다. 악기의 분리도와 명료도가 높아지는 듯한 효과도 있습니다. 참 만족스러운 소리예요.


고역-초고역이 없다보니, 소리 표현이 깨져 생기는 치찰음도 원천 제거된 느낌이라 제게는 더 듣기 좋은 해상력을 제공해주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




5) 모양새

귀 뒤로 선을 넘겨 착용하는 방식을 오버이어라고 합니다. =멋있습니다.

가끔 악기가 구비된 동아리방에 가서 드럼이나 베이스를 연주할 때 착용하고 연주하기도 합니다. 소음 차단과 음원 숙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가끔 자랑도 하고, 후배들에게 멋있어 보일까 싶어서... (현실은 곧 삼촌/이어폰에 몇십만 원 쓰는 한심한 선배)

그리고 제 모델은 투명한 clear 모델인데, 이게 또 프로페셔널한 멋을 줍니다.

자아도취하기에도 아주 적합하죠.


소리를 들려주는 성능에 아주 만족했는데 디자인과 사용 모습까지 제게 완벽해서, 결국 샀습니다.




제 여러 취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도 이어폰을 싼거 사더라도, 최대한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사고자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아르바이트를 무지하게 많이 하게 되면서, 여유 자금이 조금 생기고 좋은 이어폰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건전하고 즐거운 취미에 약간 투자를 하는 것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뒷받침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산 Shure의 SE215에 이어, 쓰던 것을 중고가로 되팔고 다시 중고를 사며 이어폰 탐방을 이어왔습니다. 한 번 옮길 때 약간의 자금을 더 얹어 상위 모델로 올라탔죠. 그렇게 몇 번 하니, 지금 쓰고 있는 UMpro30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음악도 최대한 즐기고 싶었고, 악기 다루는 사람의 부심도 부리고 싶었으며, 귀 건강도 챙겨주고 싶어서, 저는 이 UMpro30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우 잘 쓰고 있지요.


제 음악 취미를 규정하는 총체 같은 녀석입니다.

아마 다른 이어폰으로 갈아타는 일은 급전(...)이 필요할 때 외엔 없지 않을까 싶네요.








*p.s. 중고거래 수요가 많은 편이라, 유동자산 급의 유동성을 가집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효자 모델입니다.

네... 역시 저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군요... 하하하!


**p.s 브런치 글은 구글 검색에 노출되는군요. 이어폰알못인 제가 쓴 리뷰의 조회수가 높아짐에 따라 책임을 느낍니다... 리뷰에 있어 다소 부족한 내용이 있더라도 귀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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