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다해도 이건 잊지 않으리
이사한 지 석 달쯤 지나 쓰는 느린 일기 몇 자.
유치원 때부터 쭈욱 서울의 은평구에서 자란 내가 경기도 남양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이름만 들어도 어색하고 낯설기만 한 이 동네에 정착한 지도 어느새 석 달이 흘렀다. 첫 집이고 한동안 이사 없이 오래도록 머물 집이라 여기저기 손을 보고 이것저것 꾸미고픈 마음에 리모델링도 싹 하면서 애정을 듬뿍 담았다. 그동안 전세 살며 못해봤던 인테리어 로망들을 하나씩 실현해둔 터라 바라만 봐도 뿌듯한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이사비용이 가장 비싸다 할 정도로 이사 극성수기인 새 학기 시작 전 2월의 이사. 구정 연휴와 세입자 이삿날 조율 등으로 인해 빠듯한 공사 일정이라 많이 욕심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전체를 뜯어 새로 만든 부엌과 욕실, 바닥 시공, 도배, 붙박이, 중문 등 어디 하나 손대지 않은 곳이 없는 우리 집. 돌아보니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욕심도 참 많이 내었다 싶다. 선택의 선택의 선택의 연속이었던 각종 부자재 고르기에도 스트레스 하나 없이 즐겁게 즐겼던 건 우리의 집이 생긴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투룸에서 쓰리룸, 작은 방 하나가 더 생기는 것 하나로 그토록 설렜던 나날들. 아마 서재방도 게스트룸도 아닌 아이방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던 것 같다. 좁은 아기침대 대신 아기가 뒹굴뒹굴하며 편하게 잠들 슈퍼싱글 침대부터 아담한 옷장과 알록달록 보드북을 잔뜩 꽂아둘 책장 겸 장난감 수납함, 그리고 귀여운 아기 소파가 자리 잡을 곳. 아기자기하게 꾸며질 공간을 생각하면서 엄마미소가 절로 났던 시간들. 아이방 분리 수면을 시도할 생각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기와 우리 부부 양쪽 모두에게 이로울 수면과 삶의 질 향상을 꿈꿨더랬지. (이렇게 자주 새벽에 우는 아기에게 소환당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인테리어 후 세 달쯤 살아보니 정말 잘한 것과 아쉬운 점은 명확히 나뉘었다.
1. 화이트 인테리어는 사진이 가장 예쁘다 (얼룩과 때에 정말 취약하기에, 다음 이사 땐 우드톤을 최대한 써보고 싶다)
2. 바닥은 5T 장판으로 올 시공하길 잘했다 (아기가 넘어져도 덜 아플 것 같은 폭신함, 텐더 그레이는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모양과 색감을 지녔으므로)
3. 욕실 타일은 아주 짙지 않은 다크 그레이가 물 때 감추기에 정말 효과적이다. (화장실 청소 횟수가 줄어도 괜찮다, 줄눈은 다크 그레이 무광이면 금상첨화)
4. 싱크대는 넓을수록 좋다 (사각 싱크대 강추!)
5. 4000K 주백색은 진리이며 간접등은 덜 촘촘히, 그리고 작은 사이즈로 하는 것이 은은하다
6. 숲세권 집이라면 미세방충망 설치는 필수, 물구멍 스티커도 꼭꼭!
7. 무조건 중문은 필수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겨울과 여름 냉난방 모두 적용됨)
8. 욕실 샤워부스는 문을 꼭 달아서 나머지 공간을 건식으로 쓰자 (샤워할 때 사방으로 튀는 물때 걱정 무!)
자잘하게도 더 많지만 일단 크게 대략적으로는 이 정도이다.
언젠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다시 인테리어를 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양의 집으로 꾸밀 것이지만 위의 사항들은 꼭 기억하고 적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