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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하 Oct 25. 2022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이해한다는 건 진심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해한다고 얘기하고 이해받는다고 착각하는 건 흔한 일 같다. 거짓으로 이해할 바엔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해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며 서로 안도감을 느끼고 불안한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거짓된 관용과 이해를 범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든 감정에 진실됨이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반드시 100% 감정이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갖고자 하는 의지, 그것만으론 부족한 걸까.


홧김에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 그 말에 상처받은 마음도 온전히 치유될 수 없다.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의미를 잃어버린 밤. 없었던 일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앞으로 절대로 영영 없던 일이 될 수 없지 않음을 잘 알기에 헛된 간절함을 품어본다. 서로의 마음속 얼룩을 어루만지는 오늘이다. 뒤늦게도.


예민함, 배려 없음, 울컥하면 공격하는 본능. 한없이 어리고 철없는 말과 행동.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로지 오직 내 감정, 내 이익만이 중요한 사람.


원래도 알았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재발견되고 되새겨지는 내 모습에 새삼 놀랍도록 부끄럽고 경멸스럽고 내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기애가 싸늘히 식어감을 느낀다. 내 존재를 부정하고만 싶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노래 가사를 들여다본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죠.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쳐 솔직해질 필요는 없죠

굳이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게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요.


무작정 이기고만 싶었던 지난날. 내 이야기를 수긍하게 만들고 싶었고 그냥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결여된 얘기만을 뱉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냥 어떤 날엔 좀 그냥, 좀 쉽게 넘어가 주지. 뭐가 저렇게 엄격해. 꼭 저래야만 했을까 탓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돌아보면 너무나 부질없고 그렇게 아둔하고 생각이 짧고 멍청할 수가 없다.


그의 말대로다. 인정하기 싫어 몸무림 치는 내게 저 모든 민낯을 기어이 이해시키고 싶었을까 원망스럽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인정하기 힘든 본모습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역시 충분히 알았으리라. 그 정도로 말했다는 건 그도 한계를 맛보았고 더 강렬한 상처를 주고 싶었고 그 과정을 통해 분노를 삭이고 싶었을지도. 혼자만 계속 괴로울 순 없으니. 참다 참다 한 말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오늘 내 머릿속을 하루 종일 채운 두 단어. 열등감과 피해의식. 내가 가진 부정할 수 없고 숨길 수 없고 피하려 할수록 더 피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 이제는 고요히 생각에 파묻혀본다. 내가 피할 수 없는 고유한 내 성격에 깃든 저 아이들을 그저 다시 보듬어보자고, 결국 저 단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더 심하게 공격하며 예민하게 칼날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개선과 해결을 시도하고, 도구로 이용해 나를 상처 주는 자들에게 부탁하여 삼가달라 이야기하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 아이들을 다스려보아야겠다. 다스려야만 한다. 무척이나 어렵고 몹시도 고난한 여정이겠지만 더는 돌아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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