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마틸다 : 계승문제 그리고 재혼
1125년 마틸다가 노르망디로 돌아왔을때, 그녀의 아버지인 헨리 1세는 여전히 두번째 아내에게서 후계자를 얻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더 가망성이 없어보이게 됩니다. 결국 헨리 1세는 대안을 찾아야했으며 딸인 마틸다가 그 대안이었습니다.
물론 헨리 1세도 다른 많은 남성 군주들처럼 딸은 자신의 후계자로 직접 지명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아들을 얻는것보다 딸에게서 외손자를 얻어서 그를 후계자로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것이었죠.
헨리 1세는 곧 마틸다의 두번째 남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에게 외손자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익이 될만한 동맹을 원했었죠. 사실 마틸다의 조건으로 볼때 탐내는 마틸다를 아내로 얻으려는 가문이 많았을 것입니다. 중세시대 여성의 권리는 제한적이었으며 통치행위 역시 아내가 아니라 남편들이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틸다와 결혼할 경우 어쩌면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군주가 될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헨리1세는 곧 정당한 사람을 찾아냅니다. 바로 앙주 백작의 후계자였던 앙주의 조프리였습니다. 앙주백작 가문은 다른 많은 중세의 영주 가문들처럼 뛰어는 군인들이었으며 호전적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노르망디 공작령 인근의 이들의 영지가 있었기에 앙주백작들은 노르망디의 동맹이 아닐경우 위협이 되는 세력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복잡한 혼수 문제도 있었는데, 조프리의 누나였던 앙주의 마틸다는 원래 헨리 1세의 며느리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인 윌리엄이 화이트쉽 난파사건으로 사망하면서 과부가 되었고 후에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앙주의 마틸다의 혼수는 그녀 개인의 재산이었기에 친정인 앙주 가문에서 이 재산을 요구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헨리 1세는 이것을 돌려주지 않으려했고 결국 마틸다의 아버지인 풀크 5세는 헨리 1세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의 마틸다와 앙주의 조프리가 결혼하면 동맹을 굳건히 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혼수문제도 해결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이 결혼에 대해서 처음에는 시큰둥해했습니다. 매우 잘 생겨서 "미남 le bel"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앙주의 조프리였지만 마틸다에게는 아마 외모 빼고는 별로 마음에 차는 것이 없었을것입니다. 마틸다는 노르망디 공작이자 잉글랜드 국왕의 딸이었지만 조프리는 고작 백작의 아들로 결국 백작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첫남편이 황제였던것을 생각하면 남편이 아무리 강력한 영주였어도 결국 "백작"에 지나지 않는 인물일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조프리는 마틸다보다 12살이나 어렸습니다. 20대 중반의 마틸다에게 10대 초반의 조프리는 남편감이라기에는 못미더웠을 가능성도 커보입니다. 어쩌면 잘생겼다는 외모도 마틸다의 취향이 아닐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헨리 1세가 마틸다에게 원한 것은 그녀가 후계자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틸다는 결혼에 동의했으며 1128년 마틸다는 앙주의 조프리와 결혼했습니다. 다음해인 1129년 시아버지인 풀크 5세는 예루살렘의 멜리장드와 결혼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조프리는 앙주백작이 됩니다.
마틸다와 조프리의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둘다 서로에게 불만이 많았을 것었습니다. 아내는 자신보다 모든것이 부족한 남편을 무시했을 것이며, 남편은 가부장적 중세시대에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는 것을 못견뎌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헨리 1세는 비록 후계자가 될 마틸다와 조프리를 결혼시켰지만 조프리에게 노르망디나 잉글랜드에 어떤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었습니다. 헨리 1세는 후계자로 마틸다를 원한것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녀의 남편인 조프리에게도 어떤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조프리에게 아내 더 나아가서는 처가 전체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앙주 백작가문은 다혈질로도 유명했었습니다.
결국 마틸다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짐을 싸서 친정인 노르망디로 돌아와버립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헨리 1세는 사위인 조프리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딸에게도 압력을 넣었을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후계자가 될 외손자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미 민감했던 마틸다는 아마도 자신이 아들을 낳아야 아버지에게 자신이 존재 가치를 입증시킬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결국 1131년 부부는 다시 화해했으며 마틸다는 남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헨리 1세는 마틸다를 잉글랜드로 불렀으며 모든 신하들앞에서 그녀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했고 신하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요구했었습니다.
그리고 1133년 마틸다는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습니다. 이 아이는 단순히 앙주 백작의 장남의 지위를 넘어서 노르망디와 잉글랜드의 상속자가 될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국왕인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앙리(헨리)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해 마틸다는 다시 둘째아들인 조프리를 낳습니다. 그리고 곧 세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죠. 이렇게 마틸다는 후계자를 낳아야하는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므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