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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29. 2015

그 집의 돈까스가 생각나는 밤.

그 집.

정확하게 하자면... 20여년 전 경기도 성남의 한 구석의 돈까스집이다.


폐건물이 되기 직전의 큰 상가건물 입구 바로 오른쪽의 돈까스 집인데....

그 상가 꼭대기층은 영화관이었고

그 밑은 큰 중국집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그 건물에 영화관과 중국집 그리고 돈까스집이 남았다.


그 돈까스집은...그 당시 성남에서 교편생활을 하신 엄마의 학생분의 아버지가 실직후 차리신 곳인데 정말 맛있었던 집이고 내가 다니던 치과 여옆건물이라 항상 치과를 다녀온 후나 엄마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 저녁에는 그 곳에서 저녁 혹은 점심을 먹었다.

이 사진과 글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일부러 가신 것 같았다.  엄마 뿐아니라 굉장히 미식가이신 엄마 절친 선생님도 주1회 도시락 혹은 식사를 그 곳으로 가셨다.

그때 그 곳은 생각보다 조금 외지고 한번 화재도 나서 굉장히 무서운 건물이 되었기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전보다 장사도 안되실것이고..우리 가족외식때의  항상 핑계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 었다.

엄마의 학교서도 일부러 도시락을 그 곳에서 맞췄던 것이 기억 난다.

아빠도 소풍을 가시거나 출장을 가실때 꼭 그 집에서 도시락을 주문하셨다. 그때 아빠의 학교는 서울이셨다.. 일부러 30개 50개 많게는 150여개..

아빠가 주문하시는 날에는 도시락을 아빠차로 픽업해서 날 학교에 내려주시고 그러고 아빠가 출근하셨기에..... 아침부터 차에는 도시락 냄새 장국냄새가 가득했다...


그런 날의 내 도시락도 돈까스 정식 도시락... 이었기에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그 집의 정식 도시락을 싫어했다. 콩반찬이 들어가기때문이다....


그런 그 식당이 문을 닫은 것도 노력들의 끝에  그 건물이 재개발되면서였고 그 즈음 엄마도 아빠 출퇴근의 힘든 점과 중학교부터는 서울로 보내자는 계획 때문에 15년간 계시던 학교를 그만두시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서울로 와서보니.. 그런 정이 풋픗하던 식당들은 없고...

삭막한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으로 왔다..

우리가 한국을 나오기 전까지 그 제자언니는 엄마와 꾸준히 연락을했는데..  아저씨 아주머니는 안녕하신지 어떠신지 궁금하다...


내가 친구들과 가서 제대로 거하게 먹고 보니 돈이 모자라 당황스러웠을때도 아저씨는 인자하게 외상은 커녕 이거면 충분하다고 하시며 외진데라고 택시를 불러 집으로 귀가시켜주셨다.

그 일 이후 엄마에게 엄청나게 혼이 났지만......

철없던 그 시절이 지금은 그립지만 ....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게...

그러고보니 돈까스가 오늘은 너무 먹고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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