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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Nov 03. 2023

내 기분을 누군가 잡쳐 놓았다

이런 잡채같으니라고

우연히 얘기하던 중 수위에 오른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가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나이도 어린 것이 건방져, 그것도 아주 시건방져, 쯧.' 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이부터 들먹이다니, 어쩔 수 없는 꼰대인듯 싶다. 


건방지다는 건 사전적 의미로, 잘난 체하거나 남을 낮추어 보듯이 행동하는 걸 의미한다.


나에게 건방지다는 건 잘난 체가 아니라 남을 낮추어 보는 것에 해당한다.

잘난 체 하는 건 상대가 볼 땐 잘난 체 일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아니 내가 잘난 걸 어쩌란 말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살다보니 제법 자주 겪으면서 '아, 그럴수도 있구나' 하고 체득한터라, 

잘난 체가 그리 눈꼴사납진 않다. 오히려 '귀엽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남을 낮추어 보는 건 나를 높이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선을 넘는 행위이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나댄다는 의미이다.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충고랍시고 툭툭 내뱉는 건 엄연히 간섭이다.


연장자 입장에선 먼저 경험한 인생의 선배로서 건네는 말조차 간섭이자 잔소리로 여겨지는데

연소한 자가 나름 경험 좀 있다며 이래라 저래라 식의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얘기 나누다 보니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그 사람과 같이 있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내가 예민하거나 유별나서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꼈던 게 아니라, 

그를 겪어본 다른 이들도 입을 모아 하는 얘기라 점이 이상스러울만치 안심이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일단 그의 이름이 언급된 후부터 내 안의 분노가 자가발전하기 시작했다.

말하다 열받고, 말하다 빡치고, 말하다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게다가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는 점은 나를 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비로소 안심을 했다는 사실, 이건 그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걸 입증하는 거였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여전히 부아가나는 나라는 인간은 

옹졸하고 치졸한 한낱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 꼰대였다.

더불어 여전히 남의 눈치를 살피고 그것에 연연해 하는 소심한 인간이었고,

주체성이 한참 모자란, 덜 어른인 상태라는 명명백백한 반증이었다. 


이제는 그가 미워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한심하고 답답해서 나를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미움은 꼬박 하룻밤을 새게 만들었다. 망가진 기분은 악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미 못 본지 한참된 그를 두고 끙끙 속앓이를 한다는 건 미련하기 짝이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상한 감정은 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다.

나의 문제였다. 내 선택의 문제.

 

그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나는 나로서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면 되는 일인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기분이 바닥으로까지 떨어져야만 했는가.

삐뚤어질테다 흥! 하듯 내 감정의 딱지를 진물이 날 때까지 후비고 판 미련한 짓이었다. 


더는 감정의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더는 내가 나 자신을 모른척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제목 사진: 잡채 이미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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