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무언가를 하는 대단한 사람들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주는, 글쓰기 습관을 잡아주는 글루틴 13기를 진행중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를 향하고 있다.
이러다간 새로 써야 할 거 같다.
시작은 웅대했으나 과정은 심히 쫄아들어 그 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리라 라고...
바쁘다를 핑계 삼고 싶지만 오늘도 글루틴의 단톡방에는 하루 하나의 글 또는 그 이상을 쓴 작가님들의 후기 인증이 올라오고 있다. 처음에는 나와는 다른 상황이니까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아니다, 그 분들도 안 바쁜 사람이 없다. 직장인도 주부도 학생도 퇴사자도 다들 저마다의 빡빡한 일과 시간에서 시간을 아끼고 쪼개서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가이드업의 특성상 외부에서의 시간이 절대적이다. 아침 기상부터 저녁 식사에 씻고 자는 것까지 호텔에서 시작해 호텔에서 마치며 중간 이동 시간에는 버스, 기차, 비행기는 물론 마차, 트램, 툭툭이 등 다양한 탈거리 속에서 손님들과 마주한다. 스페인, 포르투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치는 등 대부분의 시간에 말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과 에피소드를 엮어도 한 팀당 소책자 한 권씩, 지금까지 수 백권의 단편본이 쏟아져 나왔을 거다. 오늘도 숱한 이야깃거리가 커피 한 잔에 녹아들고 상그리아 한 잔에 발효 중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씻으며 스트레스도 하수구 밑으로 흘러 보낸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하며 아이들 웃음 소리에 같이 웃고 얼른 팀 마치고 보기를 바란다. 벌써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이어지는 팀만 다섯 번째다. 그래, 이번 팀만 마치면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흘을 쉴 수 있어.
잠시 잠간 홈트레이닝 (주로 팔굽혀펴기) 하면서 끊임없이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수 있다며 마인드 세팅을 한다. 최근 들어 시작한 도슨트 수업을 들으며 알고 있던 사실과 새로 배우는 것에 눈이 반짝인다. 미래에 더 업그레이드, 프로페셔널해진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렇게 하고 글쓰기를 하려고 보면 눈꺼풀이 절로 감긴다. 전에는 글자를 읽을 때에 감기더니만 이제는 쓰는 중에도 감기니 글자는 최적의 수면제인 셈. 그렇게 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글쓰기 인증의 기회를 놓치고, 글루틴 13기에서 활동이 제일 뜸한 디액티베이터deactivator가 되고 있다.
실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는 예수님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끼는 제자들만 데리고 가서 같이 기도하자고 했건만, 본인만 홀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총애를 받는 제자들은 세상근심 없이 꿀잠을 자고 있었으니. 그래서 타이르고 꾸짖고 하다가 결국엔 때가 되었다며 다 그만두었다.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렇다. 내가 벌려 놓은 일도 많고, 누군가가 벌려 나에게 옮겨진 일도 많다. 이것도 놓칠 수 없고 저것도 그냥 보낼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겨우 지탱하는 체력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그렇게 '겨우'라도 하는 게 어딘가. 소시민의 나약한 위로이나 말이라도 일단 해놓고 본다.
이런 수준을 뛰어 넘어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글을 올리며 어떻게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글을 발행하는 글루틴 작가님들. 진심으로 말하건대,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