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호텔이나 식당에 피아노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주해도 된다는 허락을 먼저 구하고, 덮개를 열죠.
의자에 앉기 전부터 심장은 두근두근 떨립니다. 당연하죠.
무엇을 누르든 여지없이 전부 소리가 날 테니까요.
그래서 빠른 곡을 치면 안 됩니다. 그건 소음 공해이자 자살 행위예요.
주로 차분한 템포, 들으면 바로 아하, 그거~ 하고 아는 곡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던 발걸음을 멈추거든요. 휴대폰도 잠시 내려놓습니다.
아마추어지만 남들 앞에서 연주합니다.
몇 년을 하다 보니 이제는 떨림은 있을지언정 쪽팔리진 않아요.
떨림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꿔 생각하면 괜찮아요.
다들 그 자리에 오기까지 바쁘게 돌아다녔잖아요.
3분 아니면 5분 잠깐만이라도 쉬었다 가시라는 의미에서 들려드리는 거예요.
저와 제 가족에게는 익숙하지만 그분에겐 모처럼만에 듣는 곡일 수도 있으니까요.
건반에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떨리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오히려 편안해져요.
틀리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그냥 음악 자체로 빠져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건반이 만드는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몰입에 들어가면 힐링이 시작되는 거죠.
아침부터 종일 돌아다니면서 설명하고, 확인하고, 물어보고, 들어주고, 신경 쓰던 일에서
저를 잠시 놓는 시간이에요. 말로만 채우던 하루에 멜로디가 들어오면서 '쉼'이라는 공간이 생겨요.
아마추어의 연주이지만 마음을 담았기에 자리에 앉아 들은 분들은 술렁이기 시작해요.
오, 뭐야, 사람 달라 보여요.
연주 잘 들었어요.
돈 따로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등등
장거리 버스 이동으로 지친 몸이 커피 한 두 모금할 시간 안에 기분 전환이 된다는 게 놀라워요.
베토벤의 월광을 들으며 여독이 풀렸다면서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고요.
쇼팽의 녹턴 후엔 미소를 한껏 머금으며 식사하러 자리를 옮깁니다.
다음엔 또 어떤 곡으로 만나러 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