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를 보면 힘겨워하며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표현력에 있어 보다 풍성하게 하느라 괴로운 고뇌의 표정을 보일 뿐 보는 아이구 저 어려운 걸 치느라 얼마나 고생일까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없지요. 원래 그렇게 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백건과 흑건 사이를 피겨퀸이 깔끔하게 얼음 지치듯 유려하게 훑어냅니다. 이런 느낌은 바로크나 고전파 보다 낭만파의 음악을 들을 때 특히 더합니다.
하지만 들을 때 그렇게나 좋았던 곡을 제 손가락을 통해 재현할 때면 어랏, 분명 같은 악보인데 느낌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죠. 그때부터 일 겁니다. 세상 모든 피아니스트가 넘사벽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요.
그래도 위시 리스트에 올려둔 곡 하나를 몇 달간 죽어라 연습하고 나면, 전문가급은 (당연히) 아니더라도 가히 들어서 나쁘지는 않을 정도로는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문득 라디오에서, 연주회장에서, 또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따라 들어본 곡 중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검색을 해 봅니다.
작곡가별 손 모음 / 출처: 구글 이미지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스페인을 방문해 둘째 아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곡이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라는 곡이었는데요. 가기 전에 유튜브에서 찾아 열심히 들으며 초팽(쇼팽 콩쿨 우승 이후 조성진+쇼팽으로 붙여진 별명)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경건히 모실 마음의 준비를 했지요.
그전까지 <볼레로>라는 단순한 춤곡으로만 알고 있었던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은 (저 위 사진에 보면 제목 아래 중앙에 물벼락을 일으키는 분이 바로 모리스 라벨입니다)
외유내강의 아우라, 모리스 라벨
자료를 찾아보니 그 곡은 프랑스의 시인 베르트랑의 산문시를 음악으로 표현한 거였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곡일 거 같지만 시의 제목, 그리고 곡의 내용, 아니 시구절을 보면 은근 또는 대놓고 소름 돋거나 끔찍합니다.
곡의 제목을 한 번 볼까요?
1. 옹딘
2. 교수대
3. 스카르보
옹딘과 스카르보는 고유명사로 처음 들어보지만, 교수대를 보면, 설마 진짜인가 싶지요.
'교수대' 시의 본문은 더 가관입니다: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이던가?...
그것은 지평선 너머 마을의 벽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붉은 석양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목 매달린 시체 (헉!)
옹딘은 물의 정령, 스카르보는 난쟁이 요정입니다. (아마도 옹딘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위의 사진에서 라벨의 손을 물결이 치는 걸로 했지 싶어요)
인간에 사랑을 느끼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슬퍼하며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는 옹딘이든 (심지어 이건 그나마 소프트 버전이에요. 유럽 신화에서 묘사되는 옹딘은 남편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그의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요정으로 나옵니다), 장난치고 까불며 변덕스러운 성깔을 지닌 기괴한 요정 스카르보든, 작곡가 라벨의 손끝에서 나온 곡의 난이도가 상당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
한데 라벨은 아예 대놓고 가장 어려운 곡을 쓰기로 작심합니다. 피아노 좀 친다 하는 그대들이여, 어디 한 번 도전해 보시지요?뭐랄까,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지만 좀 사악하달까...
회화나 조각 등의 시각 예술이라면 본인의 손에서 파이널 터치를 마치고 대중에게 공개하면 그걸로 끝이지요. 그걸 다시 복사본을 떠서 만들 예술가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피아니스트에겐 어떤 곡이 주어지건 간에 그걸 재현해야 하는 과업이 남아 있습니다.
라벨은 본인의 작곡과 연주 실력에 대한 맹렬한 과시와 함께 후대 피아니스트에게 상당한 부담을 남겼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기피대상 1순위에 꼽히며 연주회에서 쉽게 들어볼 곡은 아닌 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연주를 해 내는, 그것도 훌륭히 해 내는 피아니스트들의 영상을 우리는 유튜브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피아니스트도 그걸 연주하면서 힘들어 죽겠다, 손가락 관절 나간다, 깊은 빡침이 찾아온다... 이런 표정으로 연주하는 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최고의 난이도를 보여주겠다며 열일하며 쓴 작곡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며 친절하게 화답하듯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라벨의 스카르보. 이것은 악보인가 함수인가 아니면 추상화인가. (첫 줄에서만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는 음자리표, 실화임?)
넘사벽의 피아니스트이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작곡가이든, 거창한 예술의 세계로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일상에서 쉬워 보이지만 실은 쉽지 않은 일을 마주합니다. 아침마다 식사를 차려주는 어머니 또는 아내의 손길, 운행 시간에 맞추는 대중교통 (한국이 그래요, 유럽에선 안 또는 못 맞추는 일이 일상다반사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보고서 한 장으로 요약 정리하는 스킬 등.
한 달간 도전해 본 글루틴의 글쓰기도 그러했습니다. 나이에 성별에 상관없이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다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고, 하고 싶은 일로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입니다. 설령 매일 글쓰기를 못했다 한들 (저도 놓친 적이 있습니다)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그 순간 내가 내린 선택은 가장 최상의 것이었을 테니까요.
타이핑을 치며 글을 쓰는 것도 수많은 소근육의 도움과 전두엽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쉬워 보이는 일만 있을 뿐, 쉬운 일은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쉽지 않은 하루의 일을 시작하며 마쳐가는 여러분의 일상. 멀리 스페인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