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의 이상한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는 책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들 이야기 속에 공통점을 발견할 때가 많다. 아이에 대한 부족함과 걱정거리를 학교에서 채워주었으면 한다는 점과,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기준과 철학에 아이가 도달되지 못함에 대한 슬픔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이가 학교 생활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본인이 칭찬받는 것처럼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가족만큼 끈끈한 유대감이 있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모든 삶은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자신의 역량의 한계에 직면할 때면 가족을 통해 삶을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삶에 성공도 가족의 성공이고, 삶의 실패도 가족의 실패다. 이러한 인식이 학교 교육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우리 부모들은 지금도 부단히 애를 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교육열이 높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사회, 부모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정작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교육에서 빠져있다. 부모는 '너희들 인생이야.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실상 아이들은 그 속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힘든 삶을 벌써부터 견뎌 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소유물처럼 아이를 대하며 때로는 폭력적인 행태로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저자인 김희경 씨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인간'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여린 생명체다. 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 보여준다면 작은 단위의 사회라 할 가족도 아이를 중심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불 수 있지 않을까."(p11)
무엇인가가 난해하거나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양질의 책은 참 좋은 도구이다. 이 도구를 잘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우연찮게 읽은 책이 참 괜찮은 책이면 독자는 참으로 행운아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그러한데 우연히 프롤로그를 읽다가 계속 눈이 가게 되어 읽은 경우였다. 이 책으로 우리 사회의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가족주의의 모습과 폐해, 그리고 가족 안팎에서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정상 가족'이라는 신념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개별성을 억압하고 있는지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아이의 개별성과 인권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바라보는 씁쓸함도 더해졌다. 가족의 문제를 왜 가족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지, 국가가 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인식도 깊어졌다. 이 책에서 예를 든 스웨덴식 가족과 국가의 모습과 너무 상반되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는 그러지 않는가를 자문하면서 읽어갔다. 동시에 계속해서 의문이 생겼다. 개인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것이 문제 아닌가.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인식을 바꾸어야 할까. 국가의 제도는 이 '이상한 정상가족'의 끈끈한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국가가 개인을 직접 서포팅하고 케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제도와 예산을 소요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보다는 가족을 더 믿는, 시스템보다는 연줄의 힘을 더 강렬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복지제도를 지탱할 인식과 자본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는 부모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소유물이 아니다. 적극 지원해주되 그걸 빌미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아직도 가르치다 보면 아이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아이를 끌고 가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고, 아이를 존중하지도 않는다. 학교에 공적 시스템과 공공성 강화를 외치면서도 본인은 정작 공적 시스템을 믿지 않고 연줄이 중요하고 가족 중심의 사고가 우선이다. 이런 '이상한' 정상 가족의 모습은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그리고 난 그들과 마주 앉을 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부모의 체벌은 용인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체벌이 발생할 경우 벌집 쑤시듯 요란해지는 언론보도를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보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똑같은 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뭔가 이중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p32)
"기성세대는 그 시대의 제한된 문화적 환경에서 자녀를 가르쳤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체벌의 유해성을 연구해온 발달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는 이를 자동차 안전벨트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성인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에 자랐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벨트가 없었던 덕분에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자랐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p36)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에 반대하는 개인의 인권의식이지 남의 아이도 내 자식처럼 돌보는 엄마의 눈, 전 사회의 '확대 가족화'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을 때 항의하고 신고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웃의 아이를 함께 지키는 대가족 구성원의 마음자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