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 김사과
올덕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욕망과 말초적 감각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려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1930년대에 쓰인 이 책은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인간은 신의 영역에 다가서게 되고 인간의 행복 역시 극대화될 것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믿음에 기반을 두었다. 그리고 1930년대 헉슬리가 상정한 인간의 이 어리석음은 유발 하라리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신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21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을 거다. '너희가 그렇게 찬양하는 신세계는 없다. 세계는 극대화된 욕망과 자극을 추구할 뿐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지금도 헉슬리의 그 주장은 여전히 통용되는가. 난 김사과의 <N.E.W>를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변주곡처럼 읽었다. 1930년대에 훨씬 미래의 기계문명의 진보 사회를 상상하며 쓴 헉슬리의 세계는 김사과의 21세기 새로운 세계로 다시 재무장한다. 김사과는 인스타그램과 명품 패션이 지배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현재를 감각적으로 바라보며 신세계를 그렸다. 그래서 김사과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는 어딘지 친근하다. 마치 우리하고 다른 류의 인간인 듯 하지만 결국은 극대화된 욕망과 자극의 추구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동족처럼 주인공들은 다 '나'인 것 같고 '너'인 것 같다.
1991년에 소련 붕괴라는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알리면서 태어난 정지용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맞이하는 신인류고, 새로운 현대적 괴물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또 완벽한 최영주는 어떻고. 그녀 역시 인스타그램 속의 완벽한 등장인물 아닌가. 그나마 정지용과 최영주 사이에 낀 이하나가 가장 인간적이다. 허영심에 가득 차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며 사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현실적이다. 완벽히 괴물들 속에 둘러싸인 디스피아적 세계관에 그나마 조금 더 현실적인 인간이 버티어 나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결국 욕망과 말초적 감각에 무릎을 꿇는다. 김사과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게 디스토피아를 만든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세계에서 우리가 더 괴롭게 버티도록 내버러둔다. 결국 패배하고 팔 한쪽을 먹힌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정지용과 최영주는 더 완벽해지니까. 물질과 허영이 지배되는 사회에서 발버둥 쳐도 그것을 던져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N.E.W>는 쉽게 잘 읽혔다. 그녀는 허구적 이야기에 독특하게 실제를 불어넣는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 허국적 세계에 온갖 디테일한 현대적 소품의 등장은 비록 이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너도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임을 가득 보여준다. 그녀의 세계는 더 나아가 그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은 폭력적이고 난폭하고 잔인한 사회이며 너 또한 그러지 않냐고 묻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의 세계에서 구원은 없다. 팔을 먹힌 이하나가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라고 독백은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말하고 싶었던 '너희가 그렇게 찬양하는 신세계는 없다. 세계는 극대화된 욕망과 자극을 추구할 뿐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의 21세기형 변주다.
허영과 낭만으로 가득한 세계, 유튜브에 열광하고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를 누르는 모든 사람들은 뜨끔했으리라.